이제 우리도 본격적인 다매체 다채널 방송시대에 접어들었다. 케이블TV·위성방송에 이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분명 수용자 선택의 폭을 확대시켰으며 수용자 복지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양적인 측면에선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의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의 독점적인 지상파방송 시대와는 달리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이에 따른 뉴미디어의 시청률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술적·산업적 성장이 진정한 수용자의 볼 권리 측면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내면에는 진정한 수용자 권리나 복지를 위해 아직도 풀어야 할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환경에 있어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의 진입은 국제적인 추세이며 또한 역행할 수도 없는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변화는 매체간 균형발전이라는 정부정책과 권익 증진이라는 수용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사업자간 이해관계가 뒤섞인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나타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위성방송은 난시청지역 해소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화질·고품질의 방송, 해외방송을 통한 문화 정체성 확립, 영상산업의 발전, 방송산업의 국제 위상 정립 등 다양하고 그럴 듯한 의미를 지닌 채 출발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본연의 의미는 퇴색된 채, 아직 정상적인 궤도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최근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 지상파TV 재송신 문제다. 이 문제에 있어 방송사업자들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이는 지상파TV 재송신이 각 사업자의 수용자 확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상파방송의 재송신 문제는 2001년 위성방송 출범 때부터 제기된 문제다. 하지만 아직도 제자리에 있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상태다.
물론 그동안 당사자 간에 협의를 통해 진전된 사항도 있었지만, 규제기관인 방송위원회의 속 시원한 결단은 부족했다. 본래 한반도 전체를 방송권역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일정한 수신 설비만 갖추면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법 제78조에 의해 위성방송은 KBS1을 제외한 MBC·SBS 등 다른 지상파TV의 재전송을 제한받고 있다. 따라서 지상파 재전송 제한을 받지 않고 있는 케이블TV에 비해 차별적이라는 위성방송 관계자의 주장과 케이블과 지역방송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위성방송의 지상파TV 재전송을 제한, 아니 금지해야 된다는 케이블TV와 지역방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물론 각 방송사업자 간에는 민감한 사안이고 존폐의 위기까지도 거론되는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사자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는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특히 우리나라의 난시청 가구 비율이 아직도 26%라는 통계의 의미에서 이들의 볼 권리를 과연 누가 책임지겠는가.
이미 3년여 동안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협의와 조정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위성방송과 지역방송, 케이블TV 간의 갈등은 이제 이쯤에서 결론이 나야 할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당사자 간의 협의를 통해 수신제한시스템(CAS)으로 지상파TV 권역별 재송신, 지역방송의 재정적 지원 문제 등 어느 정도의 갈등이 풀렸다.
또한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수용자의 권리나 복지를 조금이나마 우선한다면, 이른 시일 내에 이를 관장하는 방송위원회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방송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수용자 복지를 증진시키는 길인 것이다.
<박창희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park6610@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