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정보기술 용어 표준화

올해는 1994년 중국 옌지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코리언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의 10주년을 맞는 해다. 이 모임에서는 그동안 남북 및 해외 동포 과학자들이 모여 용어, 자판, 문자코드, 자모 순서 등에 대한 통일을 위해 다각적으로 표준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정보기술 용어 표준화에 있어서 ISO 2382를 중심으로 96년에 결정된 내용은 99년 발행한 1판과 2002년에 약 4300건의 용어를 포함한 2판을 펴내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북측은 남북간의 협의한 안을 국가 준표준으로 추진한 반면, 남측에서는 실질적인 국가규격으로 발전시키려면 더욱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출판한 것에 만족해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보기술 관련 학회는 2001년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를 발족한 뒤 언어표준화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2003년 12월 베이징에서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 지원과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주선으로 한국표준협회가 남측의 국가표준화와 관련된 책임있는 당사자로 나서고, 북측은 처음부터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담당해 왔던 전문가를 비롯한 기관들이 함께 참석해 실무적 차원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회의의 결과로 지난 7월 19일 선양에서 남과 북 및 해외동포 과학자들간에 정보기술의 기본용어 표준화를 위한 공동 연구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 합의는 양측의 책임 있는 기관이 승인하는 날부터 실무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번에는 전문용어를 만드는 국제규격에 입각한 작업원칙과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에 기초한 명명법과 조어법의 기본 원칙을 제정하는 작업도 동시에 추진한다. 따라서 기존의 ISO 2382 연구결과를 이들 원칙에 준하여 양방에서 심의한 다음 중간결과를 정기적인 실무회의를 통하여 조정 및 결정하게 된다. 범위는 ISO 2382 4300건에 ISO/IEC 어휘 부분에서 2200개를 추가로 선정하여 모두 6000여 건이 포함된다.

 이번 사업의 의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개성공단 개발을 중심으로 한 남북 정보기술 및 인적, 물적 교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현재 남북간 언어소통에 있어서는 경상도말과 전라도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술 분야는 이보다 심하다. 더구나 정보기술의 생명주기가 짧고 신조어가 많아 이에 대한 남북의 공동대처로 그 틈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남북의 세대에게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에 맞게 표기된 외래 용어들에 대하여 개념 정의와 구조화를 통해 일관성과 투명성을 갖추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같은 노력을 남북이 함께 한다면 남북간에 기술교류는 물론, 기술과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보산업 분야에서 남북간의 본 사업의 성과는 다른 산업 분야의 표준화에도 본보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 및 전문가들은 정보산업 분야의 경쟁력를 높이고 남북이 상보적 관계를 가지고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해 가는 데 있어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사업의 완벽한 성과도 중요하겠지만 남북이 기술 분야에 있어서 협력관계를 맺고 추진하는 본보기가 된다는 점에서 열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사업의 성과로 남북 및 해외동포 과학자들과 후손들이 교과서와 전문서적들에서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배우고 사업을 꾸려나가게 되는 날을 생각하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된다.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는 코리언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를 연내에 개최하여 과거 10년과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학술회의를 통하여 나머지 분야의 열매도 차례로 수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변정용 동국대 컴퓨터멀티미디어학과 교수 byunjy@dongg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