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시행정과 감사

모든 행사가 그렇듯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준비과정을 소홀히 하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취지와 의욕만 앞세우고 일정과 장소 등 기본 일정을 챙기지 않은 행사는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다. 그 행사가 만약 정부가 주관한 행사라면 우리는 그런 행사를 두고 흔히 ‘전시 행정’이라고 부른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은 이번 여름에 가족게임대회를 열기로 했다. 가족단위의 게임대회 운영을 통해 건전한 게임 소비문화를 가꿔나간다는 취지다. 자칫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게임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도 제고해 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100번을 들어도 좋은 취지다.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게임산업의 규모에 비해 걸맞는 게임문화가 부재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원은 대회 일정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전시행정이라는 오해를 스스로 사고 있다. 지난 24일 열기로 한 서울대회 예선을 내달 6일로 미루고 모집 기간도 일주일 이상 연기한 것. 개발원은 가족게임대회를 연다고 처음에 반짝 홍보에 열 올릴 때와 달리 주요 일정 변경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대회가 언제 열리든 말든, 참가자들이 혼선을 빚든 말든, 개발원 주관으로 가족게임대회라는 좋은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만 중요하다는 이야기일까.

 개발원 측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힘이 빠졌다. “요즘 문화관광부 감사기간이잖아요. 개발원 인력이 거기에 모두 매달려 있는 바람에 제대로 공지 못했습니다.”

 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정기 감사란다. 그러니 총상금 1000만원에 달하는 가족게임대회는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모양이다.

 일정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 이번에도 5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처음 가족대회를 개최하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모집인원이 미달, 모집기간을 늘리고 일정도 뒤로 늦추었다. 문제는 다음 대응이다. 이런 일이 가족게임대회 하나라면 모르겠지만, 또 어떤 일들이 무슨 일정에 쫓겨 미뤄지고 대충 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감사가 오히려 필요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도 든다.

 디지털문화부·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