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과 성장이 단순히 기업내적인 역량뿐만이 아니라 기업이 포함된 가치사슬 혹은 기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경쟁력에 달려있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환경요인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조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기업간 관계를 살펴보면 단기적인 성과주의 시야에 사로잡혀 가치사슬관리와 생태계 구조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는 커녕 오히려 지금까지 그나마 기능해 온 산업생태계를 허무는 행동이 빈번하다. 주가에 과민하게 연연하여 기술투자나 종업원복지보다는 이익늘리기에만 관심을 쏟는 최고경영자, 제품경쟁력의 기반을 이루는 부품 및 원천기술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투자와 육성이 실종된 정책, 협력기업의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원가 떠넘기기와 기술탈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거래관계 등 전략경영에서 항상 해법으로 제시되는 상생전략은 이상에 불과한 것인가.
최근 부활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배경은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속에서도 정부, 기업, 관련기업·협력기업 그리고 지원기관들이 서로의 생존에만 급급하기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IT산업도 지금의 단기적인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치사슬관리와 생태계 구조화를 통해 기업 간 관계의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생태계내의 구성원, 이해관계 집단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시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영속성을 가진 기업경영에서 의사결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잣대가 한정된 기간내에서 의사결정자를 대상으로 적용하다보니 종종 당장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80년대 미국기업들이 단기적인 수익에만 매달려 시장 패러다임하에서 부품업체의 잦은 교체, 빈번한 인력 구조조정, 원천기술보다는 응용기술중시로 인해 결국 장기적인 기업경쟁력을 잃어 일본기업들에 추월당한 쓰라린 경험을 했고 그 반성으로 이제는 미국기업들도 장기적인 시야의 관계 패러다임 경영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장사보다 신용과 사람을 얻는 것이 으뜸이라는 전통상인의 지혜,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시장을 지배하는 선도기업의 뛰어난 생태계 관리도 바로 관계패러다임으로의 시각전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거래상대방과 적은 이윤을 둘러싸고 누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로 다툴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생태계 경쟁력을 높여 더 많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서 생태계 구성원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간 관계의 대상을 각각 분리된 1 : 1의 거래관계 시각을 상호관련된 모든 교환주체 간의 네트워크 전체로 보는 시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의사결정은 비록 하나의 과제와 거래대상에 대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관계는 기업의 관계 네트워크 전체에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휴대폰에 환경친화적인 설계를 채택하게 되면 원가가 오르고 수익이 낮아져 단기적으로는 손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기업에 대한 소비자와 사회의 평가가 높아지고 업계에서의 리더십이 강화되며 좋은 인재가 모여든다면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사례도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노동비용 상승이 직무전문성과 사기를 높여 생산효율과 품질력을 향상시켰고 결과적으로는 매출을 증대함으로서 작은 의미의 생태계 성과를 높인 선순환을 가져온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문제 대응, 문화메세나, 지역사회에의 기여 등도 결국 기업이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관계패러다임하에서 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네트워크 관리라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산업 생태계내에에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태계라 함은 구성원 간의 생존과 성장이 보장된 장기적으로 균형잡힌 질서를 의미한다. 거대강자에 의한 약육강식은 결국은 먹이사슬체계를 무너뜨려 생태계를 파괴할 뿐이다. 생태계가 항상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그리고 위기나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생태계가 계속 진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자극을 시도하는 변종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 생태계내에 자유로운 참여와 퇴출,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지역별로 산업클러스터가 유행이다. 산·학·연의 관련주체들을 특정 지역내에 모아 협력체계를 구축함으로서 성과를 내고자하는 좋은 시도다. 그러나 물리적인 근접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태계내의 보이지 않는 기업간 관계구조다. 신뢰에 바탕을 둔 협업, 장기적이고 네트워크적인 시각에서의 기업 간 관계네트워크, 즉 생태계가 관계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compino@han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