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아케이드 게임물을 게임장에 제공한 게임개발업체에 법원이 이례적으로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과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 위반을 들어 벌금형을 선고해 파문이 일고 있다. 더구나 법원은 판결문에서 “영등위에서 18세 등급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게임물의 사행성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기구는 영등위가 아니라 사법부”라고 밝혔다. 이는 영등위의 법적 심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영등위의 역할과 위상은 물론, 비디오와 게임 등 창작 표현물에 대한 현행 심의제도의 존폐 여부까지 거론하게 만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사회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고 물의를 야기할 수 있는 창작 표현물에 대해 법원이 제재하고 나선 것은 온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처럼 영등위를 통해 적법 절차를 밟은 서비스에 대해 법원이 사행행위라고 판결한 것은 국내법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영화·게임 등 창작 표현물에 대한 영등위의 심사 권한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태도는 차세대 동력사업의 하나인 게임은 물론, 문화콘텐츠산업의 발전에 악영향마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법원의 판결대로 영등위의 결정이 법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업체들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법적 권한이 없는 영등위 심사를 통과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영상·음반·게임물은 영등위의 심사를 거치게 되어 있다. 영등위 심사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유통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그렇다고 현행 등급 판정 기준 등 심사제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성인물 등급 판정 기준 나이만 보더라도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법은 18세, 전기통신사업자법은 19세, 민법은 20세로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개발자들이 성인물을 제작할 경우 기준에 맞추기가 애매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 선정성과 사행성에 대한 영등위의 심의 강도도 한층 높아져 투자 리스크를 무릅쓰고 게임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영세업체들이 도산되는 일도 많았다. 이는 영등위가 나름대로 반사회적 표현물을 걸러내는 사회적 필터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모바일게임의 경우 통신사업법에 적용된다는 이유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사까지 받아 중복심사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이중삼중의 ‘그물망 심사’로 청소년에 해악을 미칠 선정·사행성 게임이 발 붙일 자리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항소심 등 최종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일원화되지 않은 심의제도 때문에 영등위와 정보통신윤리위,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틈새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마당에 법원까지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게임업체들의 개발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지금은 문화경쟁시대다. 세계 각국에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최강국이라고 자신하는 온라인 게임만 보더라도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가 않다. 난맥상을 드러내며 문화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콘텐츠 관련 법 규정을 서둘러 손질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