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하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상하이 착륙 후 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국제공항으로 손색없는 푸둥공항 청사를 보며 내심 감탄한 것도 잠깐이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로 올라서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흐름이 엄청 빨라졌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그것은 일종에 충격이었다. 몇년 전 베이징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도로의 분위기. 불과 오륙 년 전 이야기지만 그 때 베이징공항 대로는 마치 절대로 과속하지 않기로 결의라도 한 듯한 거북이 자동차들로 가득했었다. 고속도로 규정 속도는 60∼70km였지만 중국인 운전사는 그 이하의 속도로 느릿느릿하게 달려 짜증이 날 정도였다. 사회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속도감의 한계’를 확인하고 느긋해 하며 그 때 느낀 것은 ‘역시 만만디는 멀었다’였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달리 상하이 택시의 속도감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멋대로 차선 바꾸는 건 예사고 규정 속도를 훨씬 넘긴 과속 때문에 오금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만만디’가 어느새 ‘폭주족’으로 돌변한 것이다. 불과 몇년 새 확 바뀌어버린 도로의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야릇한 공포감의 실체는 며칠 간 상하이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형태의 ‘공한증(恐漢症)’으로 나타났다. 상전이 벽해가 되었다는 말로 표현되는 황푸장 동쪽, 즉 푸둥 지역의 IT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구시가지인 푸서 지역 하늘을 덮은 울창한 빌딩 숲을 보면서 느낀 것은 차라리 절망감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서울 도심과 테헤란로의 빌딩 생태계가 고작 상하이의 변두리 한 귀퉁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국제도시인 상하이를 보고 ‘현재 시제의 중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동행했던 모 연구기관의 연구원 이야기를 빌리면 상하이의 화려한 변신은 불과 최근 10년새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거대 화교 자본이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폭주’를 거듭한 셈이다. 더욱 기가 질렸던 것은 상하이∼계림 간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붉은 수수밭이었던 들판 곳곳에 엄청난 덩치의 대형빌딩들이 들어 서 있었다. 중국의 ‘경제 문화혁명’ 현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허공에 무수하게 떠 있는 붉은 색 간자체 한자 광고판을 보면서 지금 지구촌에서는 ‘간자의 빅뱅’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전율마저 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비웃으며 일본 열도가 이 참에 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릴 거라는 둥 비아냥거렸다. 일본이 이 지경인데, 한참 뒤떨어진 중국이 어디 감히 우리의 라이벌이나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오만에 젖기도 했다. 과연 우리의 비아냥과 오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빠져나온 장기 불황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은 죽기 살기로 뛰어 우리를 앞지를 참이다. 문민정부때부터 시작한 정치권의 싸움질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지겹게 계속 되고 있다. 그럭저럭 돌아가던 경제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경제의 기본체질은 아직 튼튼하다는 주장과 살기가 점점 어렵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성장이냐 분배냐 입씨름하다 지치니 이젠 국가 정체성과 역사 바로 세우기 시비로 하루해가 저문다. 10여 년 넘게 집안 싸움을 하다보면 집구석에 변변한 그릇 조각 하나 남아 있을 리 없을 것인데, 아직도 장터에 내다 팔 것은 있다고 하니 무슨 마술에 걸린 게 아닌지 해괴하다. ‘잃어버린 10년’은 일본보다는 바로 우리를 두고 이야기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서용범논설위원@전자신문, yb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