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이제 다시 시작이다](중)벤처, 초심으로 돌아가자

90년대 중후반 전세계적으로 몰아 닥쳤던 벤처 열풍이 거품으로 결론나면서, 그 여파가 현재까지 미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벤처 후폭풍 여파가 이처럼 막대한 배경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벤처기업들이 초심을 너무 쉽게 잃는다는 점을 우선 든다. 창업 당시 특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시작하지만 막상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쥔 다음에는 쉽게 변한다는 지적이다.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90년대 후반에 설립된 부품업체 A사의 경우 뛰어난 기술력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후, 회사를 키우기 위해 동남아 완성품 시장에 진출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다. 대표적인 성공벤처인 의료장비업체 M사는 계열사를 무리하게 확장하는 등 방만한 경영으로 결국 부도를 초래했다. 또다른 성공벤처였던 G사 역시 첫 번째 모델 성공에 도취해, 너무 많은 사업모델을 신규로 개발한 것이 오히려 화가 됐다.

 김지수 KAIST 교수는 “벤처는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많은 벤처 CEO들이 한 부분에서 인정을 받은 이후 다른 부분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실 주현 연구위원도 “모든 벤처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업체들이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잘 포장해 돈을 모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자 출신 벤처 CEO가 경영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에도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오해석 경원대 부총장은 “잠재력을 인정받던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너무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있다는 인식보다는 기술자는 기술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수 교수도 “벤처기업은 야망을 가져야 하겠지만 모든 벤처기업들이 안철수연구소·레인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또 벤처기업들이 정부 의존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DJ정부시절에 잘나가던 벤처들이 대거 몰락한 것은 거품이 빠지면서 일시에 자금이 회수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너무 기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언호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본부장은 “그동안 수많은 벤처기업 CEO들을 만나본 결과 실력있는 사업가들은 정부의 지원을 오히려 귀찮게 생각한다”며 “벤처는 어려울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를 찾아다니기 이전에 핵심기술을 어디서 가져올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