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LCD업체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두 달새 17인치 모니터용 패널의 경우 40∼50달러 가량 떨어졌다. 1년 반 동안 40달러 정도 가격이 올랐으니까 불과 두 달 만에 이를 다 까먹은 셈이다. 기대했던 TV용 패널 판매도 부진하다. 가격이 경쟁제품인 CRT TV에 비해 턱없이 높은 탓이다. 올해 초만 해도 1000만대의 LCD TV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러다가는 700만대에도 못 미친다는 비관론도 등장했다. 국내 LCD산업이 위기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직은 호들갑일지도 모른다. 사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상반기에 지난해 전체 매출에 거의 육박했으며 영업이익은 지난해 수치를 이미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LCD 위기론’을 얘기하는 것은 질적인 부분이다. 지난 2000년 삼성전자, LG필립스LCD는 각각 35%, 28%의 영업이익률을 올려 4%, 16%를 기록한 대만의 AUO와 CMO를 크게 앞서갔다. 그러던 것이 지난 2분기에는 5.5∼3% 포인트로 좁혀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내부 매출을 감안할 경우 대만업체보다도 낮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물론 서로 다른 감가상각 기간, 중장기 전략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국내 기업들과 대만 기업들 간의 기술격차가 좁혀진 결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 부문은 타 경쟁업체들이 적자를 낼 때도 항상 흑자를 기록하는 ‘절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투자 타이밍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기술과 설계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국내 LCD업체들이 투자 타이밍에 전력을 기울인 만큼 공정기술과 설계기술에도 노력을 기울였을까. 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실제 라인에 적용하는 모험을 하지 않고도 많은 순익을 내왔기 때문에 야성(野性)이 없어진 게 사실”이라며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을 때 질적인 경쟁력은 퇴보한 셈”이라고 밝혔다.
최근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가 LCD부문 합작에 합의한 것도 어쩌면 국내업체들의 방심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디지털산업부·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