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해도의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난 7월 26일 그곳 Royton 호텔에서 제3차 한·중·일 정보통신 장관 회의가 있었다. 각국 공히 정부 및 산업체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동북아 중심의 IT산업 발전을 위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며 협력과 공조를 다짐하였다.
첫날의 오찬은 일본 아소 다로 총무성 장관이 주최하였다. 각국 대표단들이 테이블 여기저기 섞여 앉아 다른 나라의 새로운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즐겼다.
어쩌다 보니 필자는 우리나라의 L사 N사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필자는 N사장에게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N사장과 함께 일하는 K상무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표준화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해온 K상무는 1년에 반은 해외출장으로, 나머지 반은 국내 각종 위원회, 학회, 혹은 국내 표준화활동 등으로 회사 밖으로만 다니고 사무실에 앉아 있을 시간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K상무가 이렇게 자유롭게 밖으로 다니고 있는 것을 N사장은 과연 알고나 있을까 하는 것이 나로서는 늘 궁금하였다. 그래서 N사장에게 물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잘 아시겠지만 K상무는 표준 전문가입니다. 표준에 관한 한 K상무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지요. 당장에 수익을 낳는 것은 아니지만 꼭 관심을 가지고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분야가 표준화분야 아니겠습니까. 다음 CEO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L사는 그 계통의 선두 기업이 아니다. 후발 사업자로서 어려운 시장 상황에 찌들어 있을 N사장이 표준에 대한 경영철학을 의외로 산뜻하고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CEO들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야가 표준분야이기 때문에 N사장의 답변은 더욱 명료하게 들렸다.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은 표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장에 수익이 되지 않는 이런 무형적인 가치에 대해 CEO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내 전문가들을 적극 지원해주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뛰어난 원천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면 굳이 표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시장이 그 기술을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MS의 윈도다. 지난 회계연도 4분기 MS는 윈도만으로 27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부가적으로 판매되는 오피스 시스템 SW의 매출액도 28억8000만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둘을 합하면 비슷한 기간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액인 36억달러를 상회하는 규모다.
WTO의 세계 규범은 국제표준을 통한 제품과 서비스 교역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표준에 자사의 기술을 반영하기 위하여 표준 전문가들은 밤낮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각 국의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또는 표준기관을 통해 장기적이면서도 치밀하게 다른 나라의 국제표준 전문가들과 유대를 가지면서 표준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 기술 무역수지는 24억2000만달러 적자로 이 중에서 IT분야가 9억100만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IT기업들이 원천기술의 확보와 이의 표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IT기업 CEO들은 오늘 한 번쯤 사내 표준 전문가를 불러 자사의 표준화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들의 표준화활동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더욱더 신나게 세계 시장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표준없이는 세계시장을 논할 수 없다.
<김홍구 정보통신기술협회(TTA) 사무총장 khk@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