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패커드(HP)의 연구개발(R&D) 전략이 바뀌고 있다. 급변하는 하이테크 시장 환경에 맞춰 기초 연구 투자는 줄이고 대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17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는 이 때문에 HP의 연구개발 슬로건이 기존의 ‘창조하라(Invent)’에서 ‘현명하게 창조하라(invent wisely)’는 것으로 바뀔 형편이라고 전했다.
HP 연구개발 전략의 변화를 웅변해주는 일화가 있다. 5년전 HP 연구소(랩)는 휴대폰, 카메라 같은 전력 소모가 적은 디지털 기기(디바이스)용 데이터 스토리지 연구에 착수, 신물질을 개발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2003년 중반 갑자기 중단됐다. 이에 대해 HP연구소를 이끄는 딕 램프먼은 “다른 기업들의 스토리지 기술 발전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빨랐다”며 당시 프로젝트가 시의성을 상실했음을 솔직하게 자인했다.
최근 부진한 분기(3분기) 실적을 발표한 HP는 주가가 추락하는 등 다른 컴퓨터업체에 비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PC시장에서는 HP와 달리 기초 연구에 큰 돈을 들이지 않는 델과 격전을 벌이고 있으며 연구개발 능력이 필요한 하이엔드 분야에서는 IBM과도 버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IBM은 데이터 스토리지서 부터 반도체까지 끊임없이 투자해야 하는 첨단분야에서 HP와 경쟁하고 있는데 연구개발 비용이 HP보다 10억달러 이상 많다.<표참조>
연구 개발능력을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시작한 HP의 혁신 노력은 전략 및 기술부(Office of Strategy and Technology)라는 부서가 주도하고 있다. 이 부서의 사령탑은 컴팩 출신인 세인 로빈슨<사진>이라는 HP 최고기술임원(CTO)이 맡고 있다. 그는 HP와 협력을 원하는 중소기업들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HP에 제안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고 HP 직원들도 전화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시 할 수 있도록 핫라인을 개설했다.
HP는 앞으로 보안, 관리 소프트웨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등 3개 분야에 연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대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칩 같은 콤포넌트 연구는 중단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기초 연구직은 크게 줄이는 대신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다수 고용했다. HP의 이같은 노력은 일면 IBM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루 거스터는 IBM CEO로 부임 했을때 기초 연구비를 줄이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한 바 있다.
HP의 단기적인 연구개발 전략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하지만 로빈슨은 ”하이테크 시장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혁신도 단기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내는 쪽으로 조정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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