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IT업그레이드와 2만 달러시대

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휴대폰 4대 중 1대가 한국산이라고 한다. 연간 1억대가 넘는 휴대폰을 세계시장에 팔 정도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생산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메모리반도체도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의 42%를 점유하고 있고, 디스플레이의 혁명이라는 PDP 시장에서도 세계시장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IT산업은 수출의 29.6%를 차지하는 등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IT산업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여전히 1만달러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산업구조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거에도 일시적으로 경제발전의 총아(寵兒)가 됐었다 사라져간 많은 산업군을 기억하고 있다. 동명목재 등으로 기억되는 합판이 그랬고, 이어서 섬유와 신발 등이 반짝 성공한 후 사라져 갔다. 그리고 수출이 증가할 때마다 부품과 공작기계 수입의 증가가 우리의 노력을 깎아먹는다는 반성과 비판도 따랐다.

 IT산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IT산업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원천기술 없는 속 빈 강정’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경우만 보더라도 CDMA 통신 칩은 미국 퀄컴 제품이고 카메라 이미지센서는 미국 옴니비전, 벨소리는 일본 야마하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간판 수출상품인 휴대폰 부품의 절반이 외산인 셈이다. 특히 IT산업의 고도화와 원천기술 국산화에 필수적인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국내시장의 83%를 외산이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는 IT산업은 있지만 원천기술과 핵심부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네트워크, 유무선망이 잘 갖춰진 우리의 IT인프라와 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IT839 전략’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 창출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국제적으로도 유무선 통합, 방송·통신 융합, 정보가전의 결합에 따른 새로운 단말기와 서비스의 표준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에 있는데 이는 소프트웨어로 구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9대 신성장동력의 결과물인 차세대 휴대폰 운용체계·텔레매틱스·모바일·홈네트워크 등도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표준을 요구하고 있다. 기왕에 우리가 테스트베드로서 앞서가는 마당에 이러한 소프트웨어 기술표준을 선도한다면 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의 원천기술과 핵심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최근 정부부처에서 공개소프트웨어의 채택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모든 신기술은 도입 초기에 신속하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국제 경쟁이 첨예한 시대에는 남보다 한 발 앞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고 인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미 개발돼 있던 기술인 CDMA로 일궈낸 휴대폰 성공 스토리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원천기술 확보와 IT산업의 질적 고도화는 물론 소프트웨어 산업육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산업의 고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이룰 수 있다. 산업인력이 고급화되면 후발국의 추월·고용 없는 성장·고학력 미취업 등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돼 분배의 정의가 저절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학계 및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도 머지 않은 미래에 원천기술을 확보한 ‘진정한 IT강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hjko@softwa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