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와 올림픽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는 요즘, 올림픽 방송과 관련한 남북 교류가 성사되었다는 반가운 뉴스를 들었다. 비록 상호 간 자체 제작된 프로그램의 교류는 아니지만 국제적인 체육행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남과 북이 상호 공유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북한이 남한과 방송·통신의 교류를 원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외부의 문화 정서와 사상 유입을 저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 방송 프로그램의 교류는 정보통신업계에 하나의 교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남북 간의 교류는 아무리 민감한 분야라도 북한 인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않으면 성사되는 사례가 많다. 현재 북한이 허용하고 있는 남북 교류사업의 대부분은 자기쪽에서 상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들이다. 과학기술의 습득, 최신기술의 이전, 공단의 구성 등은 제한된 남북 국민 간의 접촉을 허가하면서도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규모면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개성공단·금강산 공단 등은 남한의 관리자와 북측의 근로자들의 많은 접촉이 불가피한 사업이어서 북측은 현실적인 이익과 대규모의 대남 접근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갈등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올림픽 방송 교류처럼 일반 주민의 접촉이 제한된 남북한 정보통신 소통은 북한의 입장에서도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류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의 사용을 제한한 통신은 경제적인 측면에선 전혀 사업성이 없으므로 거시적인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록 나름대로 통신망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축적된 기술이 없고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다. 평양 같은 시장성 있는 지역을 외국 사업자에게 개방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땐 북한의 통신 발전보다는 수익이 되는 지역에서만 사업을 전개하는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만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통신시장에서는 구미가 당길만한 매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북한은 수익성 있는 서비스와 보편적 서비스를 적절히 연계하여 통신망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통신망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할 통신사업자는 남한 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경제 상황과 통신업계의 여건으로 볼때 북한에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진정으로 IT 산업을 앞세워 경제발전을 꾀하려 한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통신시장을 활짝 열 필요가 있다. 획기적인 정책의 변화가 없이는 북한이 추구하는 IT 산업을 통한 도약은 어렵기 때문이다. 남한도 북한의 통신산업 정책 변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이런 정책 변화의 유도는 민간 사업자가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정보통신부는 통일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하여 공동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면 북한의 통신망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사업자를 지정하여 해당 사업자에게 준비를 맡기면 된다. 정책 및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 정부의 몫이다. 만약 이런 준비를 소홀히 할 경우 북한이 통신시장을 개방했을 때 우리 주도로 북한 통신망의 발전을 추진하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향후에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여러가지의 난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북한은 통신망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초기 단계이므로 이 시점에서의 작은 관심과 투자가 향후 통신 통합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김주진 KT 차세대통신망연구소 사업전략연구실장 chaoskjj@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