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 출산운동 펼치자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핵심은 재벌개혁이었다.

 올 8월에서 정확히 5년을 빼면 전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경과한 기간은 현직 대통령 재임기간과 일치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5+3’ 방안을 제시하며 재벌개혁을 주창했다.

 5년 전 8월 1000포인트를 상회하며 고공 행진을 예고하던 거래소 주가는 ‘대우 쇼크’라는 악재를 만나 일거에 폭락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힘주어 주창했던 재벌개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전무후무한 열정을 보였다. 코스닥 시장은 거래소와는 대조적으로 지수 200을 넘나드는 상승세를 타다가 8월 23일에는 207.15라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현 지수로 환산하면 2071.50이다. 이달 23일 주가 352.05와 대조하면 5년 전의 향수가 남다르다. 2000년 2월에는 266(현재로 환산하면 2660)을 훌쩍 뛰어넘는 대기록을 남기며 2000년 상반기 내내 경이로운 지수 행진을 계속했다.

 이렇게 코스닥지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연간 4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2년까지 2만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그리고 삼성·현대·LG 등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에 지분 출자 또는 직접 투자하겠다는 사업계획서 발표, 스톡옵션제도 명문화, 개인 투자가의 벤처 열풍 등 99년 8월의 벤처시장의 열기는 찜질방의 온도보다 더 뜨거웠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벤처기업에 투신해 몇 년간 혼신을 다하면 일거에 거금을 획득하는 횡재는 꿈을 좇는 젊은이들에게 매력 그 자체였다. 1840년대 골드러시처럼 1900년도 후반 실리콘러시에서 전세계 젊은이들이 실리콘밸리에 모인 이유는 바로 스톡옵션이었다.

 IMF 사태로 출범한 국민정부는 최단기에 IMF 사태를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97년 8월 29일을 잊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날은 당시의 문민정부가 IMF에 외환관리 예속을 결정한 ‘경제 국치일’이다. 국민의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부채를 안고 출발해 IMF극복을 위한 정책의 한 축으로 벤처기업 육성책을 적극 펼친 결과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2년 전 경제 국치일의 치욕과 오명을 최단기간에 씻어 버려 세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4년 8월 벤처 시장의 언저리를 둘러보며 새삼 5년 전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참여 정부도 벤처 정책을 고려해야 할 때다.

 정보통신부의 IT839 성장동력 정책에 벤처기업이 들어 갈 공간이 얼마나 있으며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중소 벤처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고, 또 외국 제품에 밀려 순수한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이 당당하게 입찰에 참여할 길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 2000포인트를 상회하던 코스닥지수가 350 언저리에서 기고 있는 현실, 벤처기업 수가 7000개를 밑도는 통계, 벤처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젊은이들의 벤처의식을 보며 암담한 벤처 현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율이 저조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벤처 창업은 출산과 같다. 기업의 생애에도 분명히 수명이 있다. 이미 우리가 봐왔듯이 재벌 기업도 언젠가는 망해 무대에서 사라진다.

 5년 전에 보여준 그 뜨거웠던 벤처 열기가 오늘의 코스닥 시장을 5년 전의 2배 규모로 성장시키지 않았던가. 대기업에 비해 아주 미미한 업력, 인간에 비유하면 이제 겨우 초등학생 나이에 해당하는 벤처를 두고 미래의 부푼 꿈 얘기 대신 과거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년이 된 성공한 벤처 모습을 상상해야 할 것이다.

 5년 전인 99년의 벤처 불씨를 살려 정부·정치가·벤처사업가 그리고 벤처창업자 모두 힘을 합쳐 벤처 출산 운동을 펼치자.

◆오해석 경원대 부총장 oh@kyu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