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경쟁력 유감

지금 우리는 온통 ‘경쟁력’을 외쳐대고 있다. 기업은 기술개발과 인재 양성만이 살 길이라고 한다. 또 많은 기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서로 앞다퉈 중국, 베트남 등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 경쟁력이 선진 외국 대학에 비해 떨어진다고 난리다. 정부도 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자하되 경쟁력 있는 대학과 연구집단만을 선별해서 지원하겠다고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은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나 기업은 퇴출돼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 경쟁력 상실로 인한 퇴출은 개인에게는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고,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농담을 농담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심각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40, 50대 장년층의 직장으로부터의 퇴출이다. 더욱이 IT 분야 직장인의 조기 퇴출은 대부분 다른 직장으로의 전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장 생활로부터 영구적인 퇴출로 이어져, 개인적으로는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생계 수단 상실을 의미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경험과 함의적 지식을 갖춘 인재의 손실로 이어지므로 사회·경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큰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기 퇴출 대상인 40, 50대 장년층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일등 공신이며 숨은 원동력 아니었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근로시간을 묵묵히 견디면서 말 그대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땀 흘렸으며, 판로를 개척하느라 전세계를 발로 뛰어다니던 자랑스런 한국인이 바로 이들 아니었던가. 이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느라, 회사를 위해 일하느라 빠른 세계화·정보화 물결의 흐름을 놓쳐 자신의 ‘경쟁력’을 희생한 것뿐이다.

 불과 20∼30년 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웅비하던 우리나라의 기업과 직장인이 순식간에 경쟁력 없는 기업, 경쟁력 없는 직장인으로 전락하게 된 수만 가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오늘날의 문제 즉 경쟁력 상실을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은 전국민이 평생 학습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물론 그동안은 대학만 나오면 평생 동안 직장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빠른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개개인 스스로 평생 동안 자기 개발을 해야겠지만, 정부도 각 개인이 평생학습에 동참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고속 인터넷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 초고속 인터넷 환경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평생 학습 체제를 저렴한 비용으로 구축할 수 있다. 최근 e러닝, 사이버 교육, 사이버 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평생 학습 체제가 시도되고 있으나 초고속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익한 잠재력에 비해서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귀중한 국가 자산이 10대, 20대 젊은 세대를 위한 유희의 공간으로 전용(?)되는 것은 국가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참여정부의 첫 정보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IT839 계획에서도 게임산업의 육성이니,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니 하는 IT 산업 분야는 비교적 체계적으로 잘 계획되어 있으나, 정작 정보통신기술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고 IT 산업의 가장 큰 시장인 평생 학습 체제 또는 e러닝, 사이버 교육에 대한 정책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물론 평생 학습 체제 구축을 위한 e러닝 분야의 소관업무가 교육인적자원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에 흩어져 있어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참여정부 정보화 정책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해 본다. 왜냐하면 사오정, 오륙도 세대의 양산은 개인, 기업, 국가적으로 너무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초고속 인터넷이 퇴출의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터전으로 활용되어 개인에게는 삶의 희망을, 기업에는 제품 경쟁력을, 국가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김준형 경희사이버대학교 학장 jhkim@kh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