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잔치는 끝났다. 우리나라는 금 9·은 12·동 9개로 종합순위 9위를 차지해 당초 목표했던 1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해 값진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올림픽을 위해 4년여 간 피땀 흘린 선수들이 초반에 탈락해 허망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국적을 떠나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느낀 점은 ‘세계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이다. 4강 진출이 좌절된 축구도 그렇지만, 태권도도 종주국의 체면을 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걸 확인시켜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각국의 메달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금메달 순위가 곧 국가의 경제력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톱10 중에 동북아 3국 모두 진입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괴력을 발휘해 2위로 성큼 올라선 중국과 5위를 차지한 일본의 부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잘된 이웃에 배가 아파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인구나 스포츠 인프라를 볼 때 세계 9위는 사실 대단한 성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의 올림픽 성적과 경제 상황을 연계해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일본의 성적은 일본 경제가 호황기였던 60∼70년 대까지 매우 인상적인 성적을 거뒀고 84년 LA올림픽 때 절정을 이뤘다. 그러나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불황에 접어들자 90년대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에서 5개의 금 메달에 불과했던 일본이 아테네 올림픽에서 총 16개의 금메달로 호성적을 거둔 것은 경제의 부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스포츠 상황의 상관관계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일본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 현재보다 100∼150% 성적을 낼 것이라고 FT는 예상하고 있다.
10억 인구라는 하드웨어(HW)적인 역량을 앞세운 중국과 탄탄하게 다진 기초를 소프트웨어(SW)적으로 극대화한 일본을 보면서 아테네 올림픽이 어쩌면 동북아 3국이 처해 있는 경제 상황과 똑 소리 나게 맞아떨어지는지 불안감마저 든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과 일본에 협공 당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이 그대로 메달 판도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은 엉뚱한 비약인가. 중국과 일본의 금메달이 은메달보다 많은 것과 반대로 우리는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3개가 더 많다. 마치 ‘금메달’ 일류 상품의 수가 이들 국가보다 엄청나게 적은 현실처럼. 중국은 욱일승천하고, 일본은 불황기 때 키운 기초체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상대보다 기량도 뒤진 데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승리를 장담했던 파라과이와의 축구경기를 생각하면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후끈거린다. 자신감 표출도 좋지만 즉흥적인 감에만 의존하고 큰 소리치는 것은 객기일 뿐이며 내일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는 결코 아니다. 앞으로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정신이 어떻고 명분을 그럴싸하게 들이대지만 ‘국력’이 개입되면 명분은 허울일 뿐이다. 체조 오심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올림픽 끝물 여자 핸드볼 결승인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보인 우리나라 아줌마들의 처절한 혈투를 보면서, 우리 경제도 체질을 과감하게 개선해 끈적끈적한 감투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몇년 전 한일 프로 야구 정기 교류전에 참석했던 일본팀 감독의 촌평이 새삼 떠오른다. “한국 팀은 HW(야구할 수 있는 체격)는 좋은데 SW(생각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
아주 오래된 농담 같고 단순한 야구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우리 경제에 적용할 정곡을 찌르는 고언 같아 귓속에 맴돈다.
서용범논설위원@전자신문, yb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