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부산인지 상하이인지 모르겠네요.” ‘ITU텔레콤아시아2004’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 첫날부터 일찌감치 참석한 국내 한 IT업체 임원의 말이다.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전시관엔 한국어 외에 중국어가 가장 많이 들린다. 중국인이 대거 참석했기 때문이다. 전시관에 참여한 중국 업체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실력이 만만찮다는 게 관람객의 반응이다.
국내 장비업계는 그동안 중국 업체들을 얕봤다. 가격만이 무기인 중저가 시장에 어필할 정도의 실력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화웨이와 ZTE의 전시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이 따라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WCDMA 솔루션을 비롯해 cdma2000·cdma450 등 이동통신 시스템은 물론 MPLS·DWDM 등 광장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차세대네트워크 솔루션을 망라했다. 한국 장비업체들과의 격차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제품엔 오히려 앞선다는 분석도 나왔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관람객인 외국 기업인들의 태도다. 한국 업체들의 부스를 보고 미래 비전을 본 이들도 정작 비즈니스 상담은 중국 기업 관계자와 한다. 외국 기업들이 주로 접촉하는 대상은 중국의 통신사업자와 정부 관계자들이다. 미리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듯 하다. 주인공인 우리 기업들만 오히려 머쓱해질 정도다.
한 다국적 기업 관계자는 “한국 통신 사업자에 대해선 주요 경영진을 제외하곤 안면이 있지만 중국 통신사업자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중국 인근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중요성을 본사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IT강국을 만천하에 알리고 내친 김에 ‘ITU텔레콤월드’와 같은 거대 행사도 유치하려는 우리 정부와 업계로선 속만 끓일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만큼 거대 수요자는 아닐 지라도 거대 공급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단말기, 장비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산다’는 메시지를 부산ITU텔레콤은 첫날부터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부산=IT산업부·홍기범기자@전자신문, kb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