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12시 20분, 두 분의 항공대 교수가 소형항공기 ‘보라호’의 최종 시험비행 도중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 국내 항공기 개발에 중추 역할을 해온 과학자들이라서 가슴 아프기 한이 없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대한 국가차원의 후속 보상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남극 세종기지에서 불의의 조난사고를 당했던 고 전재규 대원도 그랬고, KAIST 실험실에서 액체 연료통이 폭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등진 젊은 과학도도 그랬다.
이러한 정부의 허술한 대처는 지금도 위험한 연구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사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또 이공계로 진출하려는 우수한 학생들의 진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마리 퀴리는 평생을 방사성 물질과 씨름한 과학자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던 마리 퀴리는 1898년 최초로 방사성 원소인 리듐을 발견했다. 이 방사능 연구로 마리 퀴리는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지만 그 몸은 방사능의 위험에 수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말년에 이르러서야 방사능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다. 오늘날 물리학·의학 분야에 빼놓을 수 없는 방사선 장비는 모두 마리 퀴리의 연구와 희생의 뒤를 이은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모든 위험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는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이론을 찾아내는 데 희열을 느껴 오늘도 실험실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분의 교수도 같은 경우라 생각한다. 새로 개발되는 항공기에 대한 열정과 학구적 탐구열로 서슴없이 시험용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리라. 같은 공학도로서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책임의식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두 분의 영결식은 마쳤지만 우리들의 죄스러움은 남아있다.
우리 정부가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표방하면서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보상대책이 허술하고, 처우 개선책이 단기간의 미봉책으로 그친다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당연하고 우수한 인재가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들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기여도를 보더라도 노동 8.5%, 자본 28.8%, 기술혁신 55.4%이며 앞으로 기술혁신의 기여도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서 우수 과학기술인의 의욕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일 17대 첫 정기국회 개회식에 전례 없이 여야 합의하에 과학기술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고 과기부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기술계도 환영하고 있고, 법안 통과 자체가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높이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온몸 바쳐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분들에게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지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과기부의 진정한 위상 강화며, 과학기술부총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과학기술부총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첫번째 임무는 자명해졌다. 고 황명신, 은희봉 두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문제도 다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립묘지와는 별도의 ‘국립과학현충원’을 조성하여 국가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과학기술인을 안치하는 일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특단의 사기진작 대책없이는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것은 더더욱 요원할 것이다.
◆서상기 국회의원 (과학기술정보통신 한나라당 간사) sks@assembl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