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가출 권하는 사회

 여성 노숙자와 미성년 노숙자가 크게 늘었다는 정부 발표가 최근 나왔다. 올 6월 기준 전국 각지의 노숙자 쉼터에서 집계된 여성 노숙자 수가 233명으로, 지난해 178명에 비해 31% 증가했다는 것이다. 총 노숙자 수 감소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충격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19세 이하 미성년 노숙자가 144명으로 지난해 102명에 비해 41% 늘었다는 사실이다. 미성년 노숙자 증가는 부모들의 노숙자 전락으로 인해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난 것이 주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가정불화가 원인이 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대도시에는 구걸을 하거나 벤치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만 해도 노숙자가 300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40%는 버젓이 가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선진국은 제도가 갖춰져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확고한 제도는커녕 이들을 돌볼 심적 여유도 없다. 또 외국에서는 노숙자들이 모여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정당한 권리 찾기는 고사하고 목숨을 위협받지 않으면 다행인 현실인 것이다.

 일부 젊은 층에서는 ‘원조’ 노숙자인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본받아 노숙자 생활을 몸소 겪어 보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노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알렉산더 대왕’을 만날 일이 없는 것은 물론, 각종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숙자는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피부질환이나 간염, 결핵, 매독 등에 시달리고 있고 외국에서는 마약 등 약물 복용 전력자들도 흔하고 정신질환자도 많다.

 현진건 선생의 1921년작 ‘술 권하는 사회’가 있다. 일제 강점기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지식인의 불안을 그린 리얼리즘 소설이다. 80여년이 흐른 한국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술 권하는 사회’를 지나 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1920년대 주부들의 독백은 21세기 홀로 남겨진 ‘백수’ 남편들에 의해 이렇게 바뀐다. ‘그 몹쓸 사회가 왜 가출을 권하는고!’

 허의원 경제과학부 차장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