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ETRI지원` 계속돼야 한다

제임스 왓트가 증기기관차를 발명하면서 세상은 기계문명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그 후 백 수 십년 간 산업 전체는 기계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부터 전자, 반도체, 통신, 컴퓨터 공학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IT)기술이 탄생되어, 오늘에 이르면서 세상은 IT 문명사회로 급속히 변화해 왔다.

 우리나라는 70년대의 외국 첨단교환기 도입을 계기로 IT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당시의 몇몇 테크노크라트들의 선견지명에 힘입어 전자교환기의 국산화 노력이 힘을 얻게 된다. 이 시기에 IT기술 연구개발(R&D)의 본거지로 설립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는 그동안 TDX, DRAM, CDMA 등 많은 시스템 개발을 성공시켜 우리나라를 IT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중심 기관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80, 90년대에 공기업이던 KT로부터 개발기술비의 상당부분을 지원 받았던 ETRI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연구개발비의 상당부분을 정보화촉진(정촉)기금에서 지원을 받게 된다. 이 연구비는 중·장기 사업만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개발하여 기업에 바로 전수해 주는 곳에도 투자되게 된다.

 한편, 80년대 매년 100여명의 연구원을 채용하면서 인력 수를 늘려온 ETRI는 1500명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둔화된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초고속인터넷 세계 1위를 이룩하고자 관·연·산·학이 모두 전력을 다하던 때에, 한정된 인력으로 단기간 내에 보다 많은 사업을 해야 했던 ETRI는 기업과의 공동개발 방식을 택해야 했고, 그래서 정촉기금의 일부가 기업에게도 제공되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사건들이 극히 일부에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ETRI는 그동안 국제특허 3000여건을 포함하여 총 1만5000여 건의 특허를 내면서, 1246개 기술을 2540개 기업에 전수하여, 3560억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렸다. 다른 조사에 의하면, ETRI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204조7958억원으로서 ETRI 총투자액 4조4044억원의 46.5배,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소 전체 투입액 23조3407억원의 8.8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같이 우리 IT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ETRI가 기업과의 기술 이전 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 상황 하에서 발생한 극소수의 구성원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연구소 전체가 문제가 큰 것처럼 느껴지게 세간에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이로 인해 연구개발용 정촉기금의 축소 등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ETRI의 연구사업 축소가 우리나라 전체 IT산업 발전 속도를 더디게 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커진다.

 21세기 산업은 IT기술이 근간이 되어 그 위에 각 산업이 발전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의 승자가 되려면, IT기술의 세계화, 선진화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것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ETRI를 잠시라도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국가적인 대 손실이다.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연구와 개발을 어느 정도 구분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연구는 중장기적이면서 원천기술 위주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고, 개발은 단기적이면서 실용화 위주로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근절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철저한 개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IT기술이 전 산업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정부의 모든 부처가 이 기술을 꼭 필요로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모든 부처는 ETRI가 보유한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ETRI 또한 이것을 수용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강철희 고려대학교 교수·한국통신학회 명예회장 chkang@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