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봄 차세대디지털방송표준포럼의 관계자로부터 뉴미디어 표준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같이 하자는 전화 제안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작용할 줄 몰랐다.
지상파DMB는 시속 200km로 주행중인 이동체에서도 선명한 화질을 제공받을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텔레비전서비스다. 휴대형 수신기만 있으면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프로그램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특히 지상파DMB 수신 겸용 휴대폰, 일명 지상파DMB폰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경우 이동통신망과 연동한 방송·통신융합형 양방향 데이터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또 지상파DMB폰은 개인용 기기이므로 개인의 생활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여기다 자동차에 지상파DMB 수신 겸용 텔레매틱스 단말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될 수 있다. 이처럼 지상파DMB의 상용화가 가져올 문화·사회·경제적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지상파DMB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방송서비스다. 중국·독일 등에서 유사서비스가 제한된 범위에서 시험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우리 지상파DMB와 격이 다르다. 중국과 독일에서는 버스나 기차에 장착한 공동 시청을 구상한다. 개인용 수신기 모델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지상파DMB는 방통 융합으로 인한 새비즈니스 모델과 신산업을 창출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세계가 우리나라의 지상파DMB를 주시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1월 월드DAB포럼의 아니카 나이버그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아니카 의장은 이미 그때 지상파DMB가 유럽의 DAB에 너무 중요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녀의 관심은 휴대폰을 제조하는 국내 기업들이 지상파DMB 수신기 칩세트를 개발하고, 이를 사용해 수신기를 개발할지의 여부였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DAB를 시장에 정착시키고자 애썼던 그룹의 수장으로서, 아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DAB수신기 보급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의 휴대폰에 DAB수신기능을 장착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이다. DAB표준을 확장한 지상파DMB는 유럽에 그런 단말기가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했고, 이는 DAB진영에게 복음과도 같았다. 이후 아시아DAB위원회 인사 1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지상파DMB 국제 워크숍에 ITU 관계자, 오스트레일리아·독일 등지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8월에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의 마케팅 부서에서 지상파DMB의 시장 조사를 위해 방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DMB의 국내 상용화가 난항을 겪는다면 국제화도, 이로 인한 차세대 먹거리도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모두가 지상파DMB의 성공적인 도입과 정착을 위해 합심할 때다. 핀란드 노키아가 주도하는 DVB-H가 좋다느니, 중국에 유사한 DMB 방식이 있다느니 하는 논쟁은 시기적으로도 의미없다.
지상파DMB 방식은 현존하는 국제 표준 중 가장 성능이 좋은 것들만 선택해 구성한 것으로서, 어떤 방식보다 우수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DMB방식이 지상파DMB보다 낫다는 주장이 있는데 납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중국의 DMB 역시 DAB의 확장형이므로, 이 경우 비디오 압축 방식에 따라 성능 차이가 난다. 지상파DMB는 현존하는 최고의 고성능 비디오 압축 표준인 H.264를 채택하고 있어 중국보다 열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상파DMB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관련된 주체들이 제 역할을 제 때에 수행해야 한다. 방송위원회는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방송사업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기관들은 충실히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단말기 제조사는 칩세트 개발, 단말기 개발을 신속히 진행해 제 때에 단말기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서비스, 미들웨어 관련 후속 표준화 작업도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
특히 서비스 시점이 위성DMB에 비해 과도하게 뒤지면 지상파DMB 확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적어도 위성DMB 개시와 비슷한 시점에 지상파DMB가 시작돼야 한다. 프로그램 구성 또한 중요하다. 지상파DMB에 오디오 전용 기능에 치중하는 편성보다 최소 10개 이상의 비디오 채널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지하철과 같은 전파 음영 지역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수립돼야 한다. 정책 당국의 주도 면밀한 추진을 기대한다.
<서울시립대 김용한교수 yhkim@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