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RFID 기술표준`서둘러라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의 기반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전자태그(RFID) 관련 기술표준안을 둘러싸고 ETRI와 산업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번 디지털TV와 마찬가지로 RFID리더의 주파수 전송 방식이 쟁점으로 떠올라, 이번에도 유럽식의 ‘LBT(Listen Before Talk)’로 하느냐 미국식인 ‘주파수 호핑(FHSS)’방식으로 하느냐를 놓고 입장이 맞서 있다는 것이다.

 기술표준안을 정하는 일인 만큼 여러 가지 경우를 가정해야겠지만 4년여 동안 지루한 공방을 거듭해왔던 디지털TV 전송방식 논쟁에서 얻은 교훈처럼, 이번 RFID에서도 소모적 대결이 계속될 경우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ETRI나 산업계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술의 장점을 앞세워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고 있다. 산업계는 LBT가 표준화·상용화가 안 됐고 유럽 대역에 국한된 것이어서 세계시장을 겨냥하려면 미국식인 FHSS가 적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ETRI는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을 사장하지 않고 국내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우리 기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술 기준이 확정되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산업계와, 기술 경쟁력을 고려해야 하는 국책 연구기관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5.5MHz의 UHF RFID 주파수 대역이 확정되었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해야 할 상황에서 논쟁에 발목이 잡혀 사업 첫발부터 삐걱거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표준안이 지연되면서 그 여파로 해당업체의 수출과 기술 개발이 모두 중단되었고, 전산원이 발주한 프로젝트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니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양자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타결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걸음마 단계에서부터 기술 표준 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RFID 기술 선도를 위해 관련 기술 표준화와 응용 서비스 개발은 물론, 법·제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일부 제품에 RFID 부착을 의무화해 RFID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하고 있다. 일본도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RFID 기술을 적용한 실험을 활발히 추진, 우리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선진국의 움직임에 발맞춰 항공 수하물 추적 통제 시스템, 조달청 물품 관리 등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초보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선진국이 시장 주도를 위해 발 빠르게 RFID 기술 개발에 나서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기술 표준안을 놓고 힘을 겨루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기술 표준을 어느 한 쪽의 논리에만 매달려 강제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ETRI의 ‘명분론’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상용화해 수출해야 하는 산업현장의 ‘현실론’도 마땅히 수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이 뒤떨어져 있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서둘러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표준안 마련이 늦어지면 그만큼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표준안의 지연으로 정부가 추진중인 시범사업의 차질은 물론이고,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 RFID 산업 전반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산업계와 ETRI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타결점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