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디지털홈 시범사업이 두 개의 컨소시엄을 통하여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혹시나하고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조짐을 발견하고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디지털홈에 대해 방문자나 사용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돈 주고 쓸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이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전에 소규모로 문자 그대로 시범적으로 특정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상용화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짓는 중요한 데이터를 얻는다.
디지털홈 사업은 특별히 미래의 주거환경을 구축하는, 다양한 산업 분야가 연관된 매우 복잡한 사업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과학기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해 사람들의 일하고, 배우고, 여가를 즐기는 행태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여 미래 생활 모습을 그려보고 거기에 적용될 다양한 기술과 정보 및 콘텐츠를 정리해야 한다.
그 다음에 국내 환경에 맞는 디지털홈을 구현하기 위해 연령, 가족구성, 지리적 위치, 생활 수준 등을 고려해 대표적인 몇 가지 주거형태를 추출하고 각각의 주거 형태에 따른 필수적인, 그리고 선택적인 서비스를 분류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들은 현재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더 개발해야 할 것인지, 어떤 부분은 표준화해야 할 것인지, 정부에서 나서야 할 분야는 어떤 것인지, 민간에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 다음에 할 일일 것이다. 이의 개발과 표준화 및 호환성 확보 등을 위해서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는 단계가 그 뒤를 따라야 한다.
이런 일들을 수행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의 타당성과 적용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것이 시범사업이고 이런 시범사업을 통해서 개선점과 사전 분석의 정확성, 필요 기능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절차를 밟으려면 디지털홈의 시범사업을 시작하기까지 대략 2년 정도의 사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 2년도 사전에 잘 계획되고 또 잘 운영되는 것을 가정한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그렇게 느긋하게 준비할 시간이 있느냐고 한다면, 필자의 경험으로는 잘 준비하지 못한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나중에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섣불리 경험하게 함으로써 디지털홈이 제대로 구현되기도 전에 부정적인 시각을 양산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조짐을 보면서 매우 걱정스럽다. 물론, 지금의 시범사업을 통해서 사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지 않으냐고 한다면, 필자는 덜 익은 고구마를 주면서 맛이 어떠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겠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
최근 공개된 수요자 이용행태 조사에 나타난 소비자의 선호도를 살펴보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서비스는 홈네트워크라고 하기 어려운 홈오토메이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래 가정생활에 관한 사용자의 필요는 아직 사용자조차도 잘 알 수 없는 블랙박스와 같은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지금은 막연히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약간의 편리한 기능에 선호도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앞에서 제안한 치밀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성급하게 지금 가능한 것들을 급조했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용자들의 반응이다.
물론, 서로 다른 제조업체의 제품들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 문제도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표준과 호환성에 관한 정책 결정, 그리고 필요한 연구개발을 수행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연동시키라고 다그칠 일이 아닌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우리나라같이 디지털홈과 관련해서 전국적인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앞서 있는 것일까. 세계 홈네트워크 구축 상황을 보면서 그들은 준비기간인 2년을 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마음속에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외친다. ‘그 2년이 필요합니다!’
◆박현-LG전자 홈넷사업팀장·상무 solpark@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