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세계경쟁력연감 2004’에 따르면 우리 기술경쟁력은 지난해 27위에서 8위로 급상승한 반면 과학경쟁력은 지난해보다 3단계 하락한 19위로 평가됐다.
기술경쟁력은 제조업 경쟁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가전 및 휴대폰, 조선 등 다양한 제조산업에서 세계 1위 제품이 존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면 과학경쟁력은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 인프라에 대한 평가로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기술경쟁력 부문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제조업체들이 생산기술 중심에서 R&D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며 아울러 방대한 정보기술(IT)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제조기업은 공통적 특성을 가진다. 즉 기존 제품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적 개념의 시장 지배 제품을 선 포착·개발·출시하는 한편, 확보된 혁신 제품 개발 역량을 점진적·지속적·연속적으로 개선해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활동을 균형 있게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다양화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R&D 능력의 대규모화와 조직화가 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경쟁력 초점도 개별 역량 지원 및 효율 향상에서 조직 역량 확보로 확대되고 R&D 또한 시장 요구에 대한 제품 개발의 민첩성 유지, 기술 융합에 대한 대응력 제고, 글로벌 R&D 체계의 확립, 지적 재산 축적 및 보안 등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R&D IT는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활용될 것인가. 먼저 개별 엔지니어링 업무의 생산성 향상을 지향하는 C4(CAD/CAM/CAE/CAT) 도구도 조직 역량을 지원하는 기간계 시스템과 현재보다 더욱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즉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시화(visualization)’ 기술이 자연스럽게 제품 정의 분야에 접목돼 기능적 편이성과 효율성이 강화되고 엔지니어의 창의성과 흥미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한편, PDM·PMS 등 관리 도구와 긴밀한 결합을 통해 라이프사이클이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효율적인 데이터 축적 활용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R&D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요건은 제품 개발 패턴에 관련된 제반 지식의 체계적 공유다. 다시 말해 개발에 관련된 주요 당사자들의 지식 기반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PLM·BPM·CPC(Collaborative Product Commerce) 등의 정보 체계를 활용,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어려운 대목은 업무 처리 패턴이나 기술의 공유 및 지적 재산권의 보호라는 문제다. 혁신 제품 개발을 위한 통찰력 확보도 중요하지만 최근 중요시되는 기술 융합 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단일 기술군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세 지식을 직접 교환하는 차원은 아니더라도 필요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Know where’에 대한 광범위한 기반 마련이 우선 필요하게 된다.
또 이런 과정에서 체득되는 R&D 절차를 패턴화·시스템화하는 활동이 병행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글로벌 제품 개발의 경우, 개발 및 협업 절차의 확립과 공유가 중요한 사항이다. 한국 제조업체의 또 다른 문제는 개발 라이프사이클 전체에 참여하는 조직들이 유사한 수준의 정보 활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고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런 내용이 화두가 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도 개선 정도가 미흡한 상태이며 국가 차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보다 파격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R&D 경쟁력 확보에 있어 IT 발전은 개별 요소 기술의 획기적 개선과 조직 역량 확충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품 수명 전반에 걸친 총체적 혁신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정보화 활동을 통해 기술 융합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리얼타임 R&D 역량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우종 LG CNS 부사장 wjlee@lgc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