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안 제정 작업이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시민단체들이 정부보다 먼저 기본법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7개 시민단체는 ‘(가칭)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본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기간 중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제출, 의원 발의형태로 입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종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재산손실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해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점을 감안하면 어느 때보다 기대감을 갖게 한다. 또 현재 정부혁신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안 제정 작업에도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시민단체들은 2년 전부터 프라이버시법 제정을 준비해왔다. 따라서 의견수렴도 할 만큼 했고, 선진국의 관련법은 물론 기존 개인정보보호 관련법 연구 등을 토대로 법안을 마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동안 기본법 체계와 감독기구의 성격을 놓고 정부부처와 공방을 벌였던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부처 간 의견 조율을 비롯한 기본법 제정이 더 복잡해질 우려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시민단체들이 국회에 제안할 기본법안이 정부안과 달리 독립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설립하는 형식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것만 봐도 그렇다.
더욱이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는 기본법의 뼈대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각각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법 개정안을 이미 입법 예고한 상태인 것을 고려하면 더욱 혼선을 빚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두 정부부처의 법 개정안은 특히 감시기구로 행자부의 경우 공공부문의 개인정보 보호를 담당하며, 국무총리실 아래 ‘개인정보보호 심의위원회’, 행자부에 ‘개인정보침해 신고센터’를 설립하도록 하고 정통부의 경우 민간부문 개인정보 보호를 전담해 부 안에 ‘개인정보 보호위원회’와 ‘분쟁조정 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들의 기본법안과 상충된다. 때문에 이대로 진행될 경우 기본법이 허수아비로 전락하거나 사각지대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정부의 법 개정안이 잘못됐다든가 시민단체들의 기본법안을 이들 법개정안에 맞게 고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법이 틀을 잡기도 전에 하위법과 집행기구가 먼저 만들어진 것인 만큼 모법의 틀에 따라 이들 하위법을 재개정하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법작업이 시민단체에 의해 끌려 다닐 가능성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번에 시민단체들의 기본법안 국회 제출 의사표시는 정부의 기본법 제정을 가속화하자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보네트워크의 한 관계자가 “정부 혁신위의 기본법 제정이 행자부와 정통부 등이 기존 법률의 권한을 유지하려는 시도 등에 부딪혀 번번히 미뤄졌다”고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개인정보보호는 적용분야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관련 제도 및 규제를 담당할 조직 정비 문제도 걸려 있어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기본법 제정을 마냥 미룰 사안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 강화는 정보사회로 도약하는 데 반드시 해결해야 할 기본 과제라는 것을 모두 인식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는 그동안 정부부처의 밥그릇 챙기기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개인정보보호 기본법 제정을 서둘러 그에 따른 하위 법을 조정해 앞뒤가 맞는 법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