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경 고대의 동양과 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된다. 동양의 진나라는 시황제의 명으로 만리장성을 쌓아 올렸고, 서양의 로마는 로마가도를 만들었다. 즉 중국에서는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목적의 성 축조에 국가자원의 많은 부분을 사용했고, 로마는 군대가 신속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도로건설에 국력을 투자했다.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시황제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진나라는 멸망한 반면, 로마는 오랜 기간 영화를 누리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후대에 남겼다.
정보통신(IT) 분야에서 네트워크는 흔히 도로에 비유된다. 오프라인의 핵심 인프라가 도로라면 온라인의 핵심 인프라는 네트워크다. 로마의 교훈에서 우리는 네트워크의 바람직한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폐쇄성을 상징하는 성과 진나라, 개방성을 상징하는 도로와 로마. 후대 사람들은 역사의 교훈을 곱씹어 성 대신 도로를 건설하고, 온라인 상에서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개방형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관점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경제 발전과 도로망의 발달은 동전의 앞과 뒤처럼 한 몸이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정부는 도로망 확충과 정비에 온 힘을 쏟아왔고, 도로망이 우리 국토에 거미줄처럼 뻗어가면 갈수록 경제는 성장을 거듭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온라인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56k 모뎀 속도에 흥분하던 PC통신 시절을 거쳐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초고속 인터넷 강국이 됐다. 오프라인 상에서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온라인 광대역 초고속 인프라 면에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위치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나 포화 및 투자 시점을 잘 판단해야 한다. 포화에 임박해 도로와 네트워크를 새롭게 만들고 확장하는 것은 예측, 준비한 것보다 비용이 몇 곱절 들 뿐 아니라 엄청난 불편을 초래한다. 이젠 인터넷을 통해 전화도 주고받고 영화도 실시간으로 즐기고 있다. 3D 온라인 게임도 낯설지 않다. 양방향 디지털 케이블TV 방송,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VoIP)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이른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도 나오고 있다. 오프라인의 도로에는 차량만 돌아다니지만 온라인의 네트워크는 이제 문자나 그림 같은 차량뿐 아니라, 철도(음성), 선박·항공기(방송 및 멀티미디어)까지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네트워크는 더 큰 대역폭과 안정성이 요구되며 확장이 필연적이다.
랜에서 메트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이더넷을 통해 확장의 의미를 살펴보자. 밥 멧칼프에 의해 약 30년 전 발명된 이더넷은 토큰링·FDDI·ATM 기술을 제치고 명실상부하게 랜을 대표하는 기술로 자리잡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전망된다. 랜 장비 역시 특정 업체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높은 마진을 보던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표준을 준수하는 많은 업체가 경합하며 가격 경쟁을 벌이는 소비자 중심의 시장으로 개편됐다. 속도는 이더넷(10Mbps)에서 패스트 이더넷(100Mbps), 기가비트 이더넷(1000Mbps), 그리고 현재 10기가비트 이더넷(1만Mbps)까지 빠르게 10배씩 성장해 왔다.
네트워크 속도와 대역폭 진화에 발맞춰 새롭고 다채로운 서비스 역시 등장하고 진화했다. 서비스·네트워크 인프라·테크놀로지는 삼위일체다. 서비스가 부재한 네트워크 확장은 무의미하고, 이론을 현실화하는 테크놀로지 없이는 네트워크 확장 및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대용량 멀티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10기가비트 이더넷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제반 테크놀로지가 성숙돼 10기가비트 이더넷이 실제 네트워크에 배치된 것이다. 도로 건설과 확장이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파급을 미치는 것처럼 네트워크의 진화 역시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또한 네트워크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로마는 광범위한 가도를 통해 세계를 석권했다. 우리는 물리적 도로를 통해서는 로마처럼 될 수 없다. 그러나 온라인 네트워크는 우리가 지닌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는다. 국경도 경계도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우리도 로마처럼 될 수 있다.
◆이현주 포스텐네트웍스코리아 사장 hlee@force10networ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