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통신시장은 개방의 파고에서 벗어나 있는 금단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통신은 전기·철도·방송 등과 함께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어 안보 차원에서 외국인 소유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WTO 체제 출범과 함께 통신시장도 외국인 투자 제한의 빗장을 풀면서 국경 없는 ‘무한 개방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1997년 WTO 기본통신협약 이후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한도는 현재 49%까지 완화된 상태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과 달리 후발 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제한하는 등 통신 개방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영국과 일본의 경우 대표적 기간사업자를 제외한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철폐했고, 미국도 사실상 통신시장을 완전 개방한 상태로 공익에 반하는 외국인 M&A에 대해서만 심사를 통해 규제하고 있다.
통신 시장과는 달리 전자, 철강, 금융 등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는 다른 산업은 외국인 투자 규제가 폐지되어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60%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통신주는 증권시장 최대 자금원인 외국인의 지분 한도 규제로 인해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에 빠져, 안정적인 수익성이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를 받고 있다. 주가의 상대적 평가 수준을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을 볼 때 해외 통신주의 경우 대부분 15∼17배 수준인데 반해, 국내 대표 통신주는 10배 미만으로 국내 증권시장 평균인 12∼13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같은 통신주의 가치하락은 자본 비용의 상승을 초래하여 통신 투자를 위축시킨다. 통신산업의 특성상 급변하는 패러다임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존 및 신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데 설비 투자가 부진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성장이 정체되는 결과를 낳는다.
투자 부진의 여파는 기업뿐만 아니라 IT산업 전반에 파급되어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하락시킨다. 정부는 IT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를 재도약시키기 위해 u코리아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2007년까지 통신서비스 산업에는 약 31조원의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자금시장의 상황과 통신사업자의 재무상태를 감안하면 국내 자본만으로 조달이 불가능하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등 경제 살리기의 밑거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서둘러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 자금이 유입되면 통신주의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u코리아 등 IT분야의 신성장동력 추진을 위한 자금도 쉽게 조달될 것이다. 일부에서 통신시장의 전면 개방에 대해 우려하지만 외국인 지분 한도를 우선 66%로 한정적으로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100%까지 개방한다면 외국인 대주주의 자산유출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만약 지분 한도 확대가 단기적으로 어렵다면 비지배적 사업자인 후발사업자부터 개방하고 점차적으로 지배적 사업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과거처럼 한 사업자가 전국 통신망을 보유했던 시절에 통신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면 이는 곧 통신주권의 상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여러 사업자가 전국 규모의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공익성 심사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므로 지분한도 완화가 통신주권 상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IT강국 코리아’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과거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IT산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통신 시장의 외국인 지분 확대가 바로 이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며, 이는 ‘IT839’ 등 신규 투자와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시켜 침체에 빠진 국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cyoon@han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