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학기술인의 위상

 엊그제 검찰이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임 기관장을 체포하고 도주 우려 등을 내세워 전격 구속한 일을 둘러싸고 이 곳 출연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연구원들은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적잖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대덕연구단지 출연연에서는 처음으로 기관장이 수행중 옷을 벗은 경우인데다 벤처기업 등과 관련한 혐의로 감사를 받고 결국은 구속까지 됐기 때문이다.

 현재 드러난 혐의 외에도 기소 가능한 ‘죄목’까지 추가로 거론되고 있어 수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 수사 의지에 따라 유관기관과 벤처기업에까지 파문이 확산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은 정보통신연구진흥원(IITA) 고위인사가 과거 운영했던 E사로부터 오 원장이 부당하게 주식을 취득한 사실 등 드러난 것을 제외하고라도 벤처기업 등이 관련된 추가 비리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사건의 확산을 극도로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봉합으로 가던 ETRI 사태가 전체 수사로 재점화할 수 있는데다 만약 다시 불이 붙는다면 가까스로 정리돼 가던 ETRI 연구원의 R&D 분위기가 다시 흐트러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한 국가 성장동력 사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검찰이나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러한 연구원들의 우려 이면에 과학기술계의 다소 비참하기까지 한 ‘신세한탄성 한숨’이 숨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비리나 잘못에 대해선 단죄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체포에서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과정을 들여다 보면 명색이 정부출연연 전직 기관장이라는 사회적인 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개인 차원을 떠나 통념상의 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출연연 일각에서는 “검찰에 명분을 주고 검찰의 얼굴을 세워주는 것이 죄를 가볍게 할 수 있다”는 자조섞인 진단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 생각해도 과학기술인의 대우와 사회적인 위치에 씁쓸한 뒷맛은 지울 길이 없다.

 대전=경제과학부·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