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OECD 28위 ‘R&D 성과물’

 향후 10년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99개의 핵심기술 중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 최고 기술이 단 한 건도 없다면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기술도 세계 수준의 65.1%에 그칠 뿐만 아니라, 기술 격차도 라이프 사이클을 감안할 때 한 세대에 달하는 5.8년이나 뒤떨어져 심각함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논문과 특허의 질 또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을 헤매고 있어 차세대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분야 R&D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를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국감에 제출한 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고 차세대 핵심기술은 미국이 88개로 가장 많고, 일본·유럽이 각각 16개를 확보하고 있다. 과기부가 작년에 5대 국가비전 실현을 위해 선정한 99개의 핵심기술 중 그나마 디지털 방송기술만 최고수준의 85.6%에 도달해 있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낙후돼 있다. 특히 ‘국가안전·위상제고’ 부문의 경우 기술 격차 무려 9.4년이나 돼 과연 10년 안에 선진국 수준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모두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등한시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부는 틈만 나면 기초과학 육성을 통한 핵심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해 왔다.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서로 격상해 비효율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각종 과기사업을 조율,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기부의 정책 조율 효과는 앞으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나타나겠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R&D사업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번 국감 자료에서도 나타났듯이 한 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는 과기분야 R&D논문의 질이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맴돌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본다. 지난 98년부터 2002년까지 발표된 논문과 특허출원 수는 급증했다. 하지만 논문인용지수(SCI)의 평균 인용도는 2.35로 30개 OECD회원국 중 28위라는 게 우리 과기계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SCI 인용도 1위인 스위스의 6.67의 3분의 1 수준으로 OECD 평균치인 4.57의 절반을 겨우 넘는 한심한 수준인 것이다. 논문의 질이 낮은 것은 R&D과제 선정·성과평가 때 지나치게 실적을 강조한 잘못된 관행 때문일 수도 있다. 특허출원의 경우도 전에 비해 양적으로는 많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우리나라의 기술 도입액이 32억달러를 넘어선 반면 기술수출은 고작 8억달러에 머문 것만 봐도 특허 기술의 질적인 향상 없는 미래는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상용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기술종속에서 벗어나고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핵심기술에 올인해야 한다. 하지만 기초기술 연구가 밑바탕이 되지 않은 핵심기술 개발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공계 푸대접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볼 때 ‘OECD 28위’라는 초라한 성적은 당연하다고 본다. 현장에서는 부실한 대학 교육을 탓하지만 기업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불황을 핑계 삼아 상용기술 개발에만 매달렸지 차세대 먹거리가 될 핵심원천기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가 R&D사업 운영 전반에 대한 재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기부도 차제에 한 건 위주의, 연구물로 평가하는 성과주의를 타파하는 등 R&D사업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