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교육은 과연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또 우리 사회에도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는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대학을 보는 일반의 시각이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기관들도 한국 대학의 경쟁력에 대해서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스위스에 본부를 둔 IMD에서 내놓은 주요 국가들의 경쟁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육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교육 경영부분에서 4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대학졸업자가 입사 적응력·업무능력 등 전문분야에서 취약하다는 국내 기업들의 불만이 매우 높은 걸 보면 IMD의 분석도 타당성은 있다고 본다. 이렇듯 ‘준비되지 않은 졸업자’가 많다 보니 일부 기업에서는 국내 인력보다 해외 인력 영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10여년 간 우리나라 대학은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해왔다. 소위 SCI 논문을 중심으로 한 연구 잠재력은 대폭 신장되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세계 39위로 도약하였으며, 공학 분야에서는 미국 최우수 대학의 수준을 상회하거나 대등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들어 논문의 양이 늘어나고 질 또한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에서 양질의 논문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여간 반가운 현상이 아니다. 이렇듯 논문이 증가하는 것은 대학이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교수의 채용·승진 등에 논문실적을 반영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연구 과제 선정 때 논문 실적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논문의 써야 한다는 소위 인센티브와 ‘니드(need)’가 대학의 연구 풍토를 크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 논문의 양적 증가와 질적인 향상이 곧 대학 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외부의 냉혹한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 이는 대학의 교육이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교육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및 니드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따끔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배운 전문적인 지식이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속사정을 보면 이 말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본다.
입사시험 경쟁률이 10대 1, 20대 1을 넘을 정도로 심각한 구직난이 계속되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기업이 중시하는 것은 대학에서 배운 심화된 전공지식보다 영어·컴퓨터·상식 및 면접이다. 학교 성적도 무슨 전공과목을 들었느냐보다는 전반적인 대학성적 평점만 따진다. 상황이 이러니 학생들은 쉬운 과목에만 몰리고 재수강을 많이 해 학점을 올리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대학가에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만연하고 있다.
기업은 입사시험 때 상식·인성·적성은 물론 회사에서 필요한 전공지식을 꼼꼼하게 평가하여 학생들에게 전공지식이 입사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인센티브와 니드를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입사시험에 전공과목을 넣는 등 기술 분야에 맞는 필요 인재를 가려 뽑는다면 대학 교육도 자연 이에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공과목을 경시한 시험제도를 운용하면서 대학교육에 일방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기업들이 취업시험 방법만 개선해도 대학 교육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기업들이 입사 시험 때 자사가 원하는 전공과목 능력을 요구할 경우 자연적으로 대학은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고려대학교 대학원이 LG그룹과 연계하여 기업의 요구를 수용, 대학원의 교과목을 재편성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LG가 취업을 보장하는 소위 맞춤형 교육인 것이다. 경북대학교와 만도기계의 연계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산·학 모두에 이득을 주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한민구 서울대 공대학장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