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술개발기금 `눈먼 돈`아니다

 정부의 공통핵심기술과 부품·소재·차세대 신기술 등 15개 기술 개발에 지원되는 자금이 지난 98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과제의 실패·중단·포기 등으로 1219억원이나 낭비되는 등 방만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국민의 혈세가 기술지원이라는 미명 아래 눈먼 돈처럼 낭비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뿐만 아니라 집중적인 지원이 절실한 부품·소재 기술사업의 경우, 민간 투자기관으로부터 정부 출연금 75% 이상의 자금을 유치해야 한다는 족쇄 때문에 관련 업계의 연구와 투자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등 비판마저 대두, 이에 대한 적절한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산업자원위 국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이 최근 6년간 지원해온 기술개발 과제 중 중도에 실패하거나 포기한 경우는 모두 656건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 1341억원 중 사업 실패에 따른 환수 금액은 작년 말 현재 총 63건에 104억원으로, 환수율이 고작 7.7%에 그치고 있음을 볼 때 자금 사후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물론 환수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했음에도 실패했을 경우 지나치게 엄격한 제재조항을 들이댐으로써 자칫 기업들이 과제 신청을 기피, 기술개발사업의 위축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 포기한 과제의 91%가 평가원의 평가에서 ‘성실 수행’이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평가원의 평가 잣대가 과연 투명하고 객관적인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사전·사후관리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ITEP의 고충도 이해가 가고 남는다. 하지만 중도 포기 과제의 91%가 성실하게 수행됐다는 평가원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했음에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애당초 수행 불능의 과제가 많았다거나 수행 능력이 부족한 곳에 과제를 맡기는 등 평가원의 사전평가가 원천적으로 부실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자금이라는 것이 눈먼 돈이어서 먼저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공공연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지원자금 관리나 운용 투명성 확보 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술력은 뒷전이고 로비 능력이 뛰어난 업체들이 지원자금을 타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국가 정책자금에 대한 비리 추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정부 지원자금을 둘러싼 모럴 헤저드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금이 모자라 기술개발에 애로를 겪고 있는 영세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운용되는 지원금이 방만하게 비효율적으로 운용되어서는 곤란하다. 학연과 지연 등 정실이 개입되어 무능력한 업체에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기술력이 입증된 업체들의 기술 개발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 결국은 국가적인 손실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기술자금 지원사업도 이제는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방향을 바꿀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지원 승인 등을 대폭 간소화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한편으로는 옥석을 가려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과제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