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으로 한국의 위상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ITU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한국이 브로드밴드 서비스 보급률 세계 1위를 기록했으며, 각종 경쟁력 보고서나 정보화 순위를 보아도 명실상부한 정보통신 우등국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국제 IT 행사에서 한국 기업의 부스는 늘 인기가 높다. 또 ‘한국에서 통해야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글로벌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첨단 기술의 테스트베드’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을 정도다. 한국은 인터넷 소프트웨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성능은 물론 호환성을 시험할 수 있고, 신기술 구현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정립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잘 갖춰진 통신인프라를 기반으로 응용 기술이나 다양한 통신서비스 기능 개발 측면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진정한 경쟁력으로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들여 개발한 신기술을 국내의 특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빨리’ 구현하는 데만 치중한 결과, 해외 시장으로는 제대로 수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 IT업체들을 많이 봐왔다. 우리가 개발하는 통신기술 표준이 국내용으로만 쓰이고 해외 시장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 가치와 효용을 최대화하기 힘들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코리아 스탠더드’에 그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려면 우선 ‘시장성’과 ‘경쟁력’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신기술 개발과 동시에 그것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국제 표준에 부합하거나 근접하는 기술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내 주요 통신업체들을 중심으로 우리 기술이 국제 표준에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 표준 회의 및 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진정한 IT강국으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다 높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ITU, 3GPP 등의 국제 표준화 기구 또는 표준화에 앞장서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세계 통신 흐름을 주도하는 데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관련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내 표준화 작업에도 다국적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이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컨버전스’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지금 국내외 통신사업자들은 통합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음성·데이터·비디오 등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IP환경에서 지원하는 국제 표준 IMS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하부 요소인 차세대 네트워크용 시그널링 프로토콜 SIP, H.248 등의 국제 표준을 따르려 노력중이다. 무선 분야에서는 네트워크의 용량과 커버리지 확장을 위해 MIMO와 같은 핵심 기술을 도입하려 한다. 최근 휴대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WiBro)의 기술 방식 또한, 독자 기술로 개발해 표준화를 추진해온 HPi의 국제 표준 호환성을 고려해 IEEE의 802.16e 표준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개정키로 했다. 한국이라는 제한된 시장만을 목표로 한 독자적인 ‘국가 표준’은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국내 첨단 기술업체의 해외 시장 진출 및 IT 산업의 꾸준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이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 전반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통신 흐름을 리드해나갈 저력이 있다고 본다. 잘 갖춰진 IT 인프라,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국민성을 고려하면 그렇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IT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IT산업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주력 산업으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국에서만 칭찬받고, 인정받는 기술이 아닌 전세계가 인정하고 함께 쓰는 기술 표준 도입 및 개발에 적극 앞장서야 하겠다.
<양춘경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 사장 jcyang@luc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