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졌다. 다람쥐도 바빠졌다. 먹을 게 없는 겨울을 견디려면 미리 식량을 챙겨야 한다. 다람쥐의 주식량은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다. 참나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상수리, 굴참, 졸참, 떡갈 등 도토리 나무는 다양하다. 다람쥐는 특히 졸참나무 도토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도토리묵도 졸참나무 도토리로 만든다.
다람쥐는 주운 도토리를 자기만이 아는 땅에 묻어둔다. 작은 구덩이를 여러 개 파서 도토리를 넣고 낙엽을 잘 덮는다. 말라죽거나 얼어죽을 수 있어서다. 한 곳에 몰아넣지 않는 것은 누가 훔쳐 갈까봐 하는 조바심에서란다. 다람쥐들은 도토리를 숨겨놓은 것을 곧잘 잊는다. 잊힌 도토리는 나중에 나무로 큰다. 사람들이 묵을 쒀먹고 남은 도토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에 비하면 다람쥐의 건망증은 확실히 생산적, 친환경적이다.
도토리 하면 40대 이상은 ‘다람쥐’나 ‘묵’을 생각한다. 하지만 30대 이하는 ‘돈’을 떠올린다. 바로 미니 홈페이지 커뮤니티인 ‘싸이월드’에 쓰이는 전자화폐 ‘도토리’다. 1개에 100원이다. 주로 ‘미니홈피’를 꾸밀 장식품을 사거나 선물하는 데에 도토리를 쓴다. 커뮤니티 운영회사도 바로 이 ‘도토리’를 팔아 매출을 올린다.
가입자가 최근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국민적인 열풍이라 부를 만하다.
10여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는 사람, 밤을 꼬박 새워 다음날 제대로 근무하지 못했다는 사람 등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엄숙한 국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젊은 국회의원은 국감 틈틈이 ‘싸이질’을 했다. “불법 정치자금, 화대를 ‘도토리’로 주면 안 잡힐 것”이라는 우스개도 나왔다.
싸이월드 열풍은 연구할 만한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엿보는 욕구와 보여주려는 욕구의 결합 같기도 하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인터넷에서만이라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욕구도 엿보인다.
도토리도 분명히 돈인데 왜 싸이폐인들은 단순한 돈 쓰기 이상의 가치 있는 일로 생각할까. 앞으로도 그러할까.
회원수가 늘어나면서 갈수록 현실과 가까워진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시점에서 새삼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IT산업부·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