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는 언어의 통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앞서 수출과 경제활동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한 정보통신 부문의 용어 통일과 표준화도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다. 남북의 정보통신용어의 표준화와 국어의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는 통일 조국의 정보사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8·15광복과 동시에 불행하게도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려서 지금까지도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남북의 언어가 서로 다른 의미의 낱말이 생기기도 하고 이질화됐다. 가령 ‘바쁘다’라는 말은 남한에서는 ‘할 일이 많아서 분주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일이나 사정이 곤란하다’를 뜻한다. 정보통신언어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남북에서는 물론 남한 내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보기를 들면, 영어의 ‘bit driver’를 ‘비트구동기’라고 부르고 ‘device driver’를 ‘장치 드라이버’로 읽는 사례가 있는데, 영어 ‘driver’가 ‘구동기’와 ‘드라이버’로 각기 다른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또 영어의 ‘chip’이 ‘집적회로’ ‘소자’ ‘칩’ 등으로 쓰이고 있다.
국어학자들은 남북 국어통일과 국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있다. 국어정보학회에서는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 중국, 미국, 일본 등의 학자들과 함께 중국에서 모여서 국어정보 교류에 관한 학술대회를 했고 실질적으로 정보통신용어의 표준화를 위하여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통일과 표준화’라는 주제 하나로 10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남북 학술회의와 정보교류를 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한글 자모 순서, 로마자표기법, 글꼴문제, 남북 국어 통일 문제와 컴퓨터 자판과 코드 문제, 기계번역, 말뭉치, 한손자판 문제, 음성인식기술문제, 국제표준(ISO) 규격문제, 정보기술 용어통일 문제, 표준화 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지속적으로 다뤄졌다. 그 같은 노력의 결실로 지난 2002년에는 ISO2382기준 ‘정보기술 표준용어사전’을 우리 국어정보학회와 중국조선어신식학회와 북한의 조선교육성프로그람교육센타와 공동으로 한·영·조·중·일어판(975쪽)과 조·영·한·중·일어판(973쪽) 등 두 권의 사전을 출판하였다.
남북의 학자들과 국제 여러 학자는 올 1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중국에서 ‘남북한정보교류10주년기념학술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이때 베이징2008올림픽에 사용할 한국어(조선어, 중국조선족언어)의 통일문제도 다루기로 하였다.
현재 정보통신용어의 표준화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정보통신용어 표준화는 고도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정보통신 관련 기술산업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선진 외국으로부터 물밀듯이 들어오는 새로운 기술로 인한 새로운 용어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용어를 정리하지 않고 남용·혼용한다면 정보기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표준화하고 한글화해 전문분야에 맞도록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용어의 이질감과 혼란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장애요소이므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정보화의 균형적 발전이다.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의 정보화는 남북이 함께 하는 정보화, 민족의 정보화가 되어야 하며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런 학자들의 노력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최기호 상명대학교 교수·국어정보학회장 chkh@s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