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막스 페루츠 지음/민병준·장세헌 옮김/솔출판사 펴냄/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한 최초의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발견으로 질소 비료를 합성할 수 있게 돼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의 연구가 일조를 한 것은 물론이다. 반면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가스를 도입해 연합군에 큰 타격을 입힌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리제 마이트너, 프리츠 슈트라스만, 오토 한은 방사능과 핵분열을 발견하는 등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발견으로 인해 원자 폭탄이라는 가공할 살상 무기가 만들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사회, 경제, 문화에 상상도 못할 결과를 제공하는 연구를 진행하곤 한다. 또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거나 미치광이 혹은 전범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때론 연구 결과로 인한 결과에 대해 양심적인 갈등도 겪게 된다.

 이 책은 20세기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과학의 진실과 인간성이 일치를 이룬 과학자나 그저 과학만 좇은 과학자들도 소개하고 있으며 어떤 인간성을 지닌 과학자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 생생한 사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저자인 막스 페루츠는 화학과 물리학, 유전학, 생물학, 의학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과학적 성과와 과학자들의 내면을 다뤘다. 직접 전쟁을 체험하고 전범으로 몰리기도 한 막스 페루츠는 자신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를 도왔던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자들의 모든 활동에는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특히 피임약을 개발한 칼 쥬라시와 RU 486이라는 임신 중절약을 개발한 에밀 볼리외의 에피소드도 읽을 만 하다(선택의 자유·217쪽).

 두 사람의 발명은 과학적으로는 획기적이었지만 이러한 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개발 도상국에서 이의 도입을 방해하는 정치적·종교적 압력이 만연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소개돼 있다. 볼리외는 매년 전 세계 20만명의 여성이 잘못된 임신중절로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더 안전하고 나은 방법이 있는데 왜 수많은 여성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역설한다. 이에 대해 막스 페루츠는 과학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방법을 제공할 뿐이고 선택은 여전히 과학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기술됐다. ‘옳고 그름’에서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과학을 이용해 전쟁무기를 개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인간성과 과학의 역할을 기술했다.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며 삶의 의욕을 잃었던 인간이 어떻게 삶의 의욕을 되찾아서 최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인간 승리도 잊지 않고 기록했다.

 사회과학적인 관점을 다룬 ‘쟁기를 녹여 무기로’에서는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인권은 성문법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과학의 진실은 과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도 원대하고 자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발견하는 방법’과 ‘발견에 덧붙여서’는 과학에 심취한, 즉 과학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이 과학적 발견을 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에 취해서 가정을 멀리한 사람, 성공을 위해 학생을 착취한 사람, 진정한 과학자가 되도록 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친 사람, 과학을 즐거움으로 여긴 사람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