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구습을 버리고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돼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이 용어가 참여정부 들어 ‘국가균형발전’과 ‘지역혁신’이 강조되면서 우리 생활에서 익숙해졌다.
참여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국가균형발전의 3대 원칙과 7대 국정과제의 핵심은 지방분권과 육성을 통한 국가균형발전, 지역의 경쟁력 강화와 자립형 지방화의 실현에 있다. 이에 따라 지방주도로 지역의 혁신주체들이 연계된 혁신활동을 촉발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지난 2년간 지방에서도 스스로 몸에 맞는 정책을 발굴·기획·제안하는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 봇물 터지듯 나타나고 있다.
자발적인 혁신단체들도 조직되어 자신의 문제를 중앙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고무적인 현상이 이제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굳이 중간평가를 하자면 지역혁신을 위한 붐 조성 및 기반구축과 함께 의식의 변화를 견인해 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정책의 적극적인 추진과 더불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신이 지역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선 혁신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중언컨대 혁신은 구습을 버리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즉 전혀 생소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내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역마다 기존에 갖고 있는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혁신주체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활동을 촉발하려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상은 어떤가. 시스템은 과거를 그대로 고집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수혈, 즉 빼앗아 오는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으로부터 덜 가져오면서 자신의 파이를 극대화하려는 상생전략이 필요하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지역혁신은 지역 간 제로섬 게임이 아닌 국가의 총량적 부와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이것이 곧 지역혁신(RIS)이 국가혁신(NIS)로 이어지는 핵심요소임을 이해해야 한다.
혁신의 본질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지금 지역에는 다양한 자발적 혁신단체가 조직돼 활동하고 있지만 비슷비슷한 명칭과 성격의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구성돼 혁신의 주도권이라도 잡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혁신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꾸려는 치열한 노력이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산·학·연·관이나 시민단체 모두 혁신의 주체인 동시에 그 자신이 혁신의 대상인 객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구습을 버리고 새롭게 할 수 있다.
혁신의 추진체계는 어떠한가. 지방에는 중앙부처와 연계돼 있는 다양한 추진주체뿐만 아니라 최근 조직된 자발적 단체에 이르기까지 추진조직이 혼재됐다. 물론 지방은 중앙이 갖고 있는 권력이나 재원의 분배에 참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경쟁방식이며 이 경쟁 역시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협력해야 할 관계가 경쟁관계가 되고 이들을 연계하는 네트워킹 메커니즘이 없고, 더욱이 학습경험까지 부족하다 보니 지켜보는 사람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혁신 추진주체의 양산이 아니라 혁신역량의 증대다. 더불어 정책의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자율적 통제와 조정을 기본 정신으로 한 효율적인 추진시스템이 필요하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씨를 뿌린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성과의 싹을 틔우고 있다. 그 뿌리가 더욱 튼실해지고 외부의 거친 환경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가지를 뻗기 위해서는 거름도 주고 잔가지도 잘라줘야 하는 등 할 일이 아직 많다.
결론적으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정책 및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개입과 조정이 아직은 필요하다. 물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최소한의 개입과 조정은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방정부는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분권이라는 수단가치를 적합하게 사용하며 스스로도 혁신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정책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지방이 살고 국가가 사는 길이다.
<문정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moon@gjt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