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D 업체는 자선사업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업체들이 아이팟·티보 등 HDD를 장착한 새로운 정보기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과 만성적인 공급과잉으로 경영압박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HDD는 50년 이상 범용적인 데이터 저장 매체로 사용돼 왔지만 정작 이를 개발하는 HDD 제조사들은 엄청난 개발비와 연구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HDD 개발과 공급을 자선사업으로까지 평하는 업계 내부 분위기는 HDD 제조업계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소비자들은 아이팟이나 X박스, 티보 디지털 세톱박스 등을 구입해 다양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하지만 사실은 소비자들은 좀더 작고, 더 얇고, 좀더 싸게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HDD업계의 기술혁신과 그들의 존재에 더 감사해야 한다. 지난 956년 IBM에 의해 개발된 후 하드디스크는 오랜 기간 컴퓨터의 범용 메모리로 사용돼 왔다. 일부 최신 제품은 화학과 물리, 기계 공학 등 최첨단 기술을 적용, 8000권의 서적에 해당하는 80억 바이트의 정보를 7평방 센티미터보다도 작은 드라이브에 담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를 공급하는 HDD업체들은 계속되는 수익성 악화를 고민해왔다. 심지어 하이테크 붐이었던 1998년과 1999년에도 HDD 업체들은 손해를 봤다.컴퓨터 사용자들은 HDD 업계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무임승차 효과를 누려온 셈이다.

이른바 HDD업계의 빅3가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넘버 3의 웨스턴 디지털사의 순수익은 회기연도 말인 올 6월 30일, 전년동기대비 17%가 떨어졌다. 1위 제조업체인 시게이트 테크놀로지사와 2위인 맥스터사는 각각 손실을 기록하거나 비용 절감을 위해 종업원 해고 등을 단행했다. 나스닥 지수가 1년 전에 비해 1% 떨어진 데 반해, 세 회사의 주식은 51%나 떨어졌다.

가트너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HDD 업계는 전체적으로 8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IBM이나 히타치와 같은 거대 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HDD를 발명한 IBM은 2002년 HDD 사업부문을 히타치에 팔 때 까지, 연간 약 4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HDD 업계의 경쟁체제에서 기인한다. 90년대 후반 시장의 구조조정 이후 전세계적으로 공급업체 수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HDD업계의 생산량은 수요를 압도하고 있다. 트랜스 포커스사의 자료에 따르면 HDD업계는 2003년 3분기에 7000만대의 드라이브를 선적했는데 이는 컴퓨터 업체들이 요구했던 수량보다 800만대가 많은 수치다.

지난해부터 몇달간 HDD 업계는 긴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합병 물결로 경쟁자들이 줄어든데다 자금력이 풍부한 새로운 가전 시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업체들의 강력한 판매 정책으로 인한 생산물량 증대와 HDD업체간의 영역경쟁으로 과거 반복적으로 체험했던 고질적인 과잉생산과 이로 인한 재고문제 등 심각한 타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