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국 한국의 주요 인프라를 구성하는 장비는 99%가 외산이다. 그 중에서도 ‘시스코’의 장비가 대부분이다.
어느 업체의 장비든, 완벽한 인프라 구축을 통해 한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 됐으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견 맞는 내용일 수도 있다. 나아가 특정 기업의 장비가 국내 인터넷 인프라 구축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이 같은 안이한 생각에 경종을 울리는 상황이 속속 연출되고 있다. 국내 네트워크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시스코가 고객 사후관리 서비스 비용을 내년부터 일방적으로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유지해온 ‘SIS98’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스마트넷’이라는 이름으로 변경, 사실상 서비스 비용을 인상할 계획이다.
외형상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강화를 위해 직접 AS에 나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동안 파트너사들의 중요한 매출원이었던 유지·보수 비용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다. 물론 고객들의 서비스 비용 지출이 크게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시스코로서는 한국의 인터넷 장비 수요가 정체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제품 판매로는 더는 매출 확대가 힘들기 때문에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서비스 매출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 제품이나 서비스의 공급 방식과 가격 결정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다. 고객은 싫으면 그 회사 제품을 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회사가 독과점 기업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싫더라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라도 써야 한다. 물론 독점기업의 도덕성만 확보된다면,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씻을 수 있다. 그러나 이윤 추구를 지상목표로 하는 기업에 자선 단체의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직 정확한 금액은 예측할 수 없으나, 고객이나 시스코 파트너사들의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대안을 만들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일 터다. 독과점의 부메랑은 그래서 더욱 무섭다.
홍기범기자@전자신문, kb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