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주민등록번호 이대로 좋은가

지난 1960년대 이후부터 사용되어온 주민등록번호가 지금의 전자 신용사회에 과연 적합한 것인가. 원래 주민등록제도는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68년 무장 공비 침투 사건으로 인해 국가안보론이 팽배했던 당시에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 주민등록증 소지의 의무가 주어졌다. 그러다가 1990년도에 들어와서는 주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 인구 동태를 명확히 하여 신속한 행정 처리를 도모할 목적으로 주민등록의 전산화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도입된 주민등록번호가 지금에 와서는 행정과 금융은 물론 민간상거래에서도 개인을 인증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로 인식되어 이제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을 식별하는 단순한 기능 측면 외에 위조 가능성, 개인정보 보호, 사용의 편의성 측면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당초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마련한 것이 반공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방법은 국가적 비밀로 유지되어야 마땅하나, 이미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나 방법이 인터넷상에 알려져 있다. 청소년이 이를 이용해 허위로 만들어진 주민등록번호로 성인인증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이니 지금의 주민등록번호는 위조 가능성 측면에서 이미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물론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지만, 주민등록번호만을 가지면 할 수 있는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부 네티즌이나 미성년자들이 익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중 처음 여섯 자리가 자신의 생년월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나머지 일곱 자리 중에는 성별과 출생지역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성차별과 지역갈등을 없애려고 애쓰고 있지만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가 이를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거래는 물론, 입학이나 입사 지원서에도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게 되어 있어 오히려 성이나 지역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여섯 배나 많은 미국에서는 아홉 자리의 사회안전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합법적인 취업자를 가려내고 올바르게 과세하는 것이 그 번호의 주목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는 달리 각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자리 수가 너무 많다. 물론 숫자의 의미를 알고 나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다. 난수와 같은 아홉 자리의 수를 외우는 것보다 의미를 알고 있는 열세자리의 수를 외우는 것이 쉽다면 우리의 것이 좋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문제가 있으니 전자신용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식별번호체계를 마련하든지 지금의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재정비하든지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혹자는 변경에 따르는 혼란과 비용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가 금융거래, 휴대전화서비스, 전자상거래 등에 부당하게 사용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미 잘 알려졌듯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금융거래나 상품구매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나 휴대폰, 각종 사이버 금융거래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개인 신상정보의 상당부분을 알아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대한 보완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식별번호체계 재정비 사업이 국가적 비용 부담을 초래하겠지만 오히려 새로운 IT 장비와 인력의 수요를 발생시켜서 식어가는 IT 산업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의 주민등록번호가 이대로 좋은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고 저울질해봐야 할 것이다.

 <민병준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bjmin@inche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