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이 다시 한번 호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정부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IT839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자못 크다. IT839란 DMB, 와이브로(WiBro) 등 8대 신규 서비스를 발굴해 BcN·IPv6·USN의 3대 인프라를 구축하고 차세대 이동통신·홈네트워크·텔레매틱스 등 9대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자는 정부의 IT산업 육성책이다.
와이브로는 IT839 핵심서비스 중 하나로 유무선이 결합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는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와이브로 시장을 바라보는 전망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미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 시장은 포화됐으며 와이브로가 상용화되는 시점에는 WCDMA가 진화된 HSDPA가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경쟁환경 속에서 시장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퇴출된 발신전용 휴대전화(CT-2)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반면 와이브로는 CDMA와 달리 직접 기술을 개발, 국제 표준화를 추진중인 만큼 통신산업 역사상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특히 IP 기반의 모든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올(all) IP 기술로 TPS(Triple Play Services, 하나의 단말기로 음성·데이터·방송서비스 제공)가 가능해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와이브로를 통한 IT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기술규격의 우수한 성능이 바탕이 돼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관련 기술규격 표준화 과정에서 와이브로를 기반으로 인터넷전화(VoIP)를 결합하자는 제안이 이동통신사업자들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의 많은 제조사, 통신사업자, 국책연구소가 와이브로 표준규격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와이브로 표준규격은 IEEE802.16 기고와 회의참여, HPi 과제 추진, 기술시연 등을 통해 국내 유수의 업체가 열과 성의를 다해 준비중이다. 와이브로는 이 규격을 기반으로 WCDMA(HSDPA)와 선의의 서비스경쟁을 해야 하며, 국제표준인 IEEE802.16에서 역할비중을 높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발전시켜야만 한다.
이렇듯 와이브로가 국내 통신산업에 미칠 영향에도 불구하고, IEEE802.16 국제표준에서 제공하고 있는 VoIP 관련 규격이 단지 이동통신사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제한한다면 우리 스스로 국내 규격의 국제경쟁력을 낮춰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VoIP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에 의하면 오는 2008년에는 VoIP가 전체 음성통신시장의 12.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20년 후에는 기존 전화서비스는 완전히 사라지고 VoIP 통화만 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통사업자들은 지금의 와이브로 기술로는 VoIP서비스를 통해 품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VoIP 품질은 이동통신 품질과 비교시 소비자가 느낄 만큼 현저한 차이가 없다. 설령 이통사들의 주장이 맞더라도 궁극적으로 서비스 선택권은 이용자에게 있다. 유용한 서비스를 단지 기술적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규격 제정 과정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업자의 오만에 불과하다.
통신사업자는 예측 가능한 이용자의 요구사항에 맞춰 규격을 제정한 후 필요한 기술을 보완, 적기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또 이통사업자가 와이브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소비자의 통신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나 이동전화, 초고속인터넷 등으로 활성화된 국내 IT시장은 신규서비스 부재와 사업자의 투자의지 축소로 불황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때문에 이용자는 상당 기간 신규 서비스의 혜택을 못누리고 있다.
IT산업 활성화는 몇몇 사업자의 의지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용자의 요구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으로 와이브로 서비스의 활성화를 원한다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 규격의 제정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하나로텔레콤 휴대인터넷사업추진단 기술계획실 최규식 상무
kschoi@han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