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마케팅
김상훈 지음/박영사 펴냄/
미국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기업 실무자들에게는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크로싱 더 캐즘(Crossing the Chasm)’의 저자인 제프리 무어는 한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면서 ‘MBA의 마케팅 교과서에 있는 대로 했더니 회사가 망하더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야구팀 감독이 대기업의 CEO는 될 수 있어도 샴푸나 아이스크림 같은 소비재를 히트시킨 마케팅 관리자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나 첨단 통신 제품의 마케팅을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코카콜라의 부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는 “나머지 일생을 설탕물을 팔면서 보내고 싶은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는가”라는 스티브 잡스의 집요한 권유에 못 이겨 애플컴퓨터로 자리를 옮겼지만,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CEO자리를 내놔야했다.
저자인 김상훈 서울대 교수는 이 책의 도입부를 이와 같은 이른바 ‘전통적 마케팅’의 한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왜 하이테크 마케팅인가. 하이테크 제품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불확실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부익부 빈익빈이 보편화돼 있는 하이테크 시장의 동인(Driver)은 무엇인가.
이 책은 하이테크 제품의 정의를 시작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하이테크 제품시장에서 왜 전통적 마케팅이 아닌 하이테크 마케팅이 필요한지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꼭 알아야할 이론적 지식은 물론, 실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제품, 가격,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을 기초에서 활용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소비자 행동과 소비문화를 전공했던 필자는 혁신적인 신제품일지라도 소비자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이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될 때 어떻게 마케팅해야 할지에 대해 상세한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특히 책 서두에서는 하이테크 마케팅의 이해와 하이테크 마케팅의 개관 등을 설명, 독자들에게 이론적인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캐즘 모형’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테크 마케팅의 핵심전략을 설명하는 제3장에 이르면 이 책은 이론서에서 실무서로의 재빠른 전환을 보여준다. 초기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초기시장에서 성공했지만 주류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단계의 시장 정체상황인 캐즘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하고 어떤 전략은 절대 사용하면 안되는지, 또 수요팽창 시기인 토네이도가 왔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은 어떤 전략을 써서 시장을 지배하게 됐는지 등을 명괘한 논리로 설명했다.
영문 비즈니스 서적중에는 IT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이슈들을 다룬 것들이 종종 있었지만 국내 도서로 하이테크 기업들의 제품 및 시장개발 등 마케팅 이슈를 체계적으로 다룬 것은 이 책이 처음. 지난 10여 년간 해외에서 발간된 하이테크 관련 주요 서적이 다루었던 내용들도 상당부분 정리돼 있다.
이 책은 실무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이슈들, 예를 들어 하이테크 상품의 시장조사 결과는 과연 얼마만큼 믿고 사용해야하는 지, 또 세상에 처음 나온 진짜 신제품의 고객 기반 형성과 확산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하이테크 신상품의 가격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케팅 담당자의 의사결정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읽고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실무자용 교과서’며 하이테크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와 경영인들이 책상에 올려놓고 수시로 참조할 만한 ‘요리책’에 가깝다.
두께에 질리고 딱딱한 어투에 거부감이 생기는 전형적인 ‘교과서’와 비교할 때 이 책은 세련된 표지만큼이나 친근한 하이테크 도우미가 될 것이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