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IT산업 `세계 1등`으로 가는 길

요즘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깨가 축 처져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대로만 가면 우리는 진짜 IT 대국이 되는 듯 생각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금융 쪽에서도 IT라면 별로 매력 없는 분야로 치부되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IT산업의 생태 환경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각종 동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면서 하나의 종이 다른 종의 성장을 촉진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해 건강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도 건전한 경쟁 환경 속에서만 다양성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은 누가 뭐래도 IT산업 분야에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미국이 통신산업 경쟁정책을 가장 먼저, 확실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1959년도의 캐터폰 결정(Carterfone Decision)에 의한 전화기 시장 개방이었다. 이 결정을 시발로 미국은 AT&T에 의해 독점화되어 있던 단말기 시장을 분리, 경쟁화했다. 또 1970년대부터 컴퓨터 조사를 진행해 컴퓨터통신 서비스 시장을 전화시장에서 분리, 경쟁화해 인터넷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또 1982년 장거리 전화 시장을 독점적인 시내전화 시장으로부터 분리해 오늘날 비약적인 통신시장의 도약을 이끌어냈다. 독점시장에서 분리·개방되어 경쟁이 도입된 단말기 산업, 컴퓨터통신 산업, 그리고 장거리 전화 산업 등은 미국을 IT산업의 열대 우림지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앞서지는 못했어도 통신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이 비교적 이른 편이다. 1982년도에 전화기 시장을 개방하자마자 단숨에 세계시장을 제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인터넷 사용과 초고속망의 보급률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1990년대에 유선망의 개방과 경쟁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다.

 반면 무선망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무관하게 거의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 결과 무선 분야에서는 초기의 유선 시장처럼 무선 네트워크를 가진 자가 단말기 시장에서부터 부가서비스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산업면에서는 오히려 자생력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바일 뱅킹, 모바일 마케팅도 이동통신 사업자가 직접 주도하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고 단말기 개발에서 유통까지 이동통신사업자의 지배 내지는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단말기를 제조하기 위한 원동력인 다양한 창의력이 시장에 의해 선택받기 이전에 독과점 사업자에 의해 먼저 선택 또는 양해받아야만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하루 빨리 개혁되어야 무선과 관련한 IT산업이 백화제방(百花齊放)식으로 꽃피게 되고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보급률에 따른 방대한 시장이 진정한 IT산업의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망 개방 정책을 조속하고 확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첫째, 네트워크 사업자는 단말기 시장에 일체 개입해서는 안 된다. 둘째, 네트워크 사업자는 망을 완전히 개방하고 스스로 부가 서비스를 할 경우에는 법인격을 달리 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로부터 어떠한 보조나 편익도 받아서는 안 된다. 셋째, 유통망이 완전 개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망 개방 정책이 실행되게 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신규사업 허가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망 개방과 연계하여 바터(barter)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국이 지역 벨에 망 개방과 신규사업 허가를 연계한 것과 같은 방식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사용률,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이동통신 보급률, 반도체·휴대폰 수출 등 몇 가지의 피상적 지표 때문에 마치 IT분야에서 굉장한 선진국이나 된 듯한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폐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예속적 생태계 때문에 이대로 가면 불원간에 IT산업계는 황폐화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곽치영 비젼플랜트 회장 kwack@visionpla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