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는 헌법재판소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듯하다. 집권 2년여 사이에 헌재 때문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으니 말이다. 지난 5월 14일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 기각 결정을 내려 60여일간 정지된 대통령직을 돌려 줬다. 그로부터 4개월여 만인 지난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한번은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고 또 한번은 치명타를 입힌 셈이 됐다. 이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참 민주화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 정부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는 논리로 보면 맞는 말이다.
헌재는 헌법에 관한 분쟁을 사법적 절차에 따라 판단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민심이나 정치적인 배려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은 분명히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난번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각 결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번 헌재의 결정이 개혁의 추진에 힘을 실어 줬다면 이번 결정의 정치적 의미는 국민의 살림살이를 챙기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대통형 탄핵이나 행정수도 이전보다는 당장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과 특별법(?)을 만들라는 국민의 요구로 해석된다.
재계를 중심으로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이 빈사 직전에 있는 한국 경제에 약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행정수도 건설의 무산에 따른 대책을 내놓을 것이며 그 처방은 결국 경제 문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정부가 마련중인 ‘한국판 뉴딜 정책’이 관심거리다. 건설 등 일부 분야에 한정한 당초 구상으론 부족할 것 같다. IT를 포함한 모든 산업과 경제를 포괄하는 ‘빅(big) 뉴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는 각종 규제 완화는 물론이고 당장 약발을 받을 만한 단기적인 정책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발표 시기도 12월 초라면 너무 늦다.
정부는 25일 이해찬 총리가 대독할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노 대통령의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컴퓨터산업부·이창희차장@전자신문, chang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