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IT표준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이달 초 브라질 플로리아노풀리스에서 2004년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전기통신표준총회(WTSA)가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ITU 표준화부문 최고 회의로서 필자는 이미 수차례 WTSA에 참석하였으나 이번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각오로 회의에 참석했다.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SG(Study Group)의 의장을 반드시 맡아 보겠다고 결심했고 이미 연초에 공식적인 의사를 피력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아·태지역을 포함한 주요 관련 전문가들에게 이미 상당한 지지 기반도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필자가 지원한 전기통신 과금 및 요금정책 연구반(SG3)이 14개 그룹 중 중요 그룹인데다가 보름 전까지 단일 후보였던 것이 갑자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지원을 받은 새로운 미국후보가 의장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필자는 미국이나 유럽 후보들의 ITU에 대한 기여도, 국가적 차원의 의장 진출 전략과 인지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들이 필자보다 유리한 입지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40여 시간의 장거리 비행중에도 어떤 전략으로 미국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겨 성공적으로 의장 진출을 할 것인지가 줄곧 마음을 사로잡았다. 회의장에 도착한 날 오후부터 아·태지역 조정회의에 참석해 지역 전문가들의 지지를 재확인한 것을 시작으로 회의 막바지까지 미국 측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순탄치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 후보에 대한 불리한 얘기들-‘한국의 ITU 공헌이 미국의 6분의1밖에 안 된다’ ‘한국 후보는 SG3에 대한 직접적인 활동이 없었다’ ‘유럽의 두 나라는 한국 후보에 대해 명시적인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는 등-도 끊이지 않았다.

 발언의 파괴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중국, 카메룬(아프리카), 호주, 시리아(아랍) 대표들에게 지지 발언을 약속받고 수석대표(HoD) 회의를 기다렸다. 최종 HoD 회의를 하루 앞두고, 비공식 지역별 협의에서 필자에 대한 지지 등을 토대로 결국 미국이 SG3 의장후보를 철회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아! 지구의 반대편에서 드디어 대한민국도 ITU 표준화부문 의장 한 자리를 차지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그동안의 긴장감이 한순간 피로로 변해 몰려왔다.

 이제 자칭 타칭 IT 강국이라 하는 우리나라의 국제 표준화 활동을 재조명하면서 몇 가지 필자의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IT국제표준화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중심에 서기 위해서 국가는 물론 활동하는 전문가 한 사람 한 사람이 IT외교관으로서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이번 핵심그룹 의장 진출 과정에서도 필자의 미천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간 국가적 지원 하에 꾸준히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한 많은 회원국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4년 동안 성실한 활동을 펼쳐 오는 2008년도 WTSA에서 한국 전문가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당장 돈이 되는 IT 생산과 수출뿐만 아니라 그 저변을 이루는 인프라로서 국제 표준화나 IT 문화의 선진화에도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IT 10대 강국을 논하면서 UN산하 대표적 IT 전문기관인 ITU에의 기여가 현재 189개국 중 14∼18위에 머무르고 있다거나 세계적으로 스팸메일이 가장 많이 오는 나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 등은 시급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국제 표준화 활동에 있어서 국가 차원의 많은 지원과 노력이 있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부터는 그 목표를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에서 재조명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IT 국제표준화 활동에 있어서도 보다 구체적인 목표와 세부전략을 수립해 IT분야 국제표준화의 명실상부한 실질적인 리더로서 나서야 할 때다. 한국 IT 표준화는 변두리에서 그 중심을 향해 닻을 올려야 한다.

 <박기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통신서비스연구단장·ITU-T 표준화부문 국제의장 kipark@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