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기업공개(IPO)시장의 영웅은 구글이었다. IPO와 관련된 구글의 일거수 일투족은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의 관심거리였으며 또한 시장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지난 1999년 벤처캐피털이 2500만달러를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5년 만에 250억달러로 1000배나 뛰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구글 상장 얘기가 나올 때면 2500만달러의 시드머니를 내놓았던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어 캐피털 이름이 함께 등장한다. 벤처캐피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두 회사가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구글과 같은 투자기회가 두 벤처캐피털에 찾아온 것이 부럽고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투자해서 수익을 만들어낸 것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벤처가 일궈 낸 신화는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회사가 투자한 기업 중에도 2년 전에 불과 2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올해는 1500억원으로 예상되는 성공사례도 있다.
과거에 비해 될성부른 벤처기업인지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더 힘들긴 하지만 분명히 잘 가공하면 보석이 될 기업이 우리 주위에 있다. 바로 이것이 벤처 그리고 벤처캐피털이 갖고 있는 매력이며 이 맛에 벤처 관련 종사자들은 날밤을 샌다. 그러나 벤처와 관련해 우리 주위에서 나오는 소식들은 온통 우울한 것뿐이다. 경기와 관련해 나오는 용어인 하드랜딩이 지금 우리 벤처산업과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시장은 빈사상태고, 그러다 보니 공개를 신청한 기업도 오히려 등록을 뒤로 미루고 있다. 자연히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자본회수가 안되고 돈줄이 막혀 투자여력을 잃고 있다.
실제로 여러 통계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한때 147개까지 늘었던 벤처캐피털은 현재 107개로 40개가 줄었다. 투자규모는 더 크게 줄고 있다. 2000년 2조원이 넘던 것이 작년에는 6000억원, 올 상반기에는 3800억원에 불과하다. 또 올 상반기 벤처투자조합 결성액은 6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더 방치하면 시스템 전체가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일부에서 벤처캐피털이나 벤처기업의 부적절한 경영사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작용만 들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찾아내 분위기 반전을 꾀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벤처동향을 보면 이런 초조감은 더욱 심해진다. 우리 못지않게 심각한 벤처 버블의 붕괴를 경험했던 미국은 이미 지난 2분기 바닥을 치고 벤처투자가 완연하게 살아나는 추세다. 벤처캐피털이 지원한 기업의 IPO는 지난 2년간 분기별로는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벤처투자에서 주목할 것은 초기단계 기업투자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설기업에 자금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특히 향후 10년 후 본격적인 돈줄로 등장할 바이오·의료장비 등 생명공학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기회를 선점하고 있으며 한국은 경쟁기회와 미래 경쟁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현재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돌려 선순환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벤처캐피털에 대한 자금과 투자지원을 통해 벤처캐피털이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개인·기관투자자가 소극적인 만큼 분위기조성을 위해서도 정부가 좀 더 나서줬으면 하는 것이 업계의 희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조합에 대한 정부출자예산과 기관투자가의 주식양도차익 비과세를 확대하고 벤처캐피털 투자주식 손금인정범위도 완화해야 한다.
또 코스닥시장 활성화도 늦출 수 없는 명제가 되고 있다. 퇴출기준은 강화하고 획일적인 진입기준보다는 업종이나 규모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기준을 마련해 시장이 건전하면서도 유연해졌으면 한다.
벤처에 자금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이 강건해져서 투자여력이 살아나고 벤처기업의 주무대인 코스닥시장이 활성화되면 벤처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벤처 관계자들은 항상 꿈을 먹고 산다. 그래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조성이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김한섭 KTB네트워크 대표이사 hskim@kt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