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각종 공공기금이 매우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도 책임지거나 문책 당하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본래의 조성 취지에 어긋나게 지원되거나 중복 지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죽했으면 기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감사원 개선 지적이나 자금 집행의 부작용 문제가 불거질 때면 그때서야 일부분 고친다고 하지만 여전히 빈틈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매년 그 해의 운용계획을 수립해 집행하는 정부 기금의 주먹구구식 운용에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보통신부가 엊그제 발표한 정보화촉진기금 중기 운용계획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와 달리 중장기적 시각에서 수입전망과 투자계획을 세워 보다 계획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5개년 계획에도 이런 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2.3GHz 주파수 매각대금이 들어오는 2005년을 제외하고는 순조성 규모의 감소가 지속될 것을 예측, 2008년 말부터는 1조원 이상의 규모가 유지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한 것이 단적인 예다. 때문에 기금 확대 제한에도 IT839 전략 등 늘어나는 지출 수요를 맞출 재원 조달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정보화촉진기금 등 재원 확보 방안 마련이 시급했던 IT839전략 추진에도 별 무리 없이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에 명칭을 내년부터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그동안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받아온 것을 조금이나마 탈바꿈해 보자는 의지로 받아들여져 우리의 관심을 끈다. 또 일반계정을 폐지하고 IT 연구개발(R&D)에 집중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일단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보화촉진기금의 조성 목적 가운데 하나가 정보통신 R&D비용으로 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 지원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재원배분에 있어서도 기금 목적에 대한 부합정도와 사회적 편익의 크기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정하도록 한 것은 옳은 결정이다. IT차세대 핵심기술 및 IT전략기술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원천기술 개발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한 것도 그런 점에서 이해된다.
물론 이번 중기 운용계획안은 아직 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와의 협의와 기금 운용심의회의 심의를 거쳐하는 등 절차가 남아 있다. 하지만 거의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봐도 무방하다. 중기 운용계획안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보화촉진기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이미 지난달 입법 예고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후속문제다. 5개년 계획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기금을 좀 더 짜임새 있게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공공기금은 예산과 달리 편성되지만 상당 부분 예산과 성격이 비슷한데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주머닛돈으로 꾸려지고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개발에 지원하는 한편, 자금이 부족한 유망 벤처기업에 도약의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 기금의 조성과 운용의 투명성·효율성·공공성을 계속 높여가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자면 전문가 집단과 이해 관계자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정통부는 민간위원을 70% 정도로 대폭 늘리겠다지만 그 정도로 될 일이 아니다. 사실 관변 인사 위주로 구성된 기금 운용심의위원회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기금으로서의 역할을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금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정보접근성도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