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 조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전 업종에서 평균 5∼8년, 반도체 부문에선 최소 8년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설정한 99개 핵심기술 분야에서 2.1년, 차세대 반도체 등 10대 신성장동력산업에서 2.5년 정도로 기술격차가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다. 기술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기술 후진국가와의 기술력 차이를 유지 내지 넓히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철저한 준비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1세기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노과학기술(NT), 정보전자과학기술(IT), 생명과학기술(BT), 환경에너지과학기술(ET) 등 우리의 4대 국가전략 과학기술은 서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들 과학기술 분야의 공통점은 원자나 분자의 조작 능력을 바탕으로 그 물질의 성질을 제어, 응용하며 각 분야의 지식이 복합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다양한 학문 영역들이 분자로써 상호 융합됨으로써 타분야 기술에 관한 이해도가 배가될 뿐만 아니라, 개별적 과학기술 역시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신과학과 신기술이 융합되고 혁신되고 있는 중심에 바로 ’분자공학(Molecular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동하고 있다. 분자공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등의 기초과학을 토대로 하는 분자과학과 원자 단위를 영상화하고 조작하는 나노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나노미터에서 생체분자 크기에 이르는 광대역 분자 구조를 이해하고 제어하며 궁극적으로는 분자조립체와 같은 미세구조체를 합성하는 공학적 연구다. 반도체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며 추진되고 있는 국가적 프로젝트인 신성장동력의 80개 전략기술 중 50여개 기술이 분자공학과 관련돼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분자공학처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기반기술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이 고려돼야 하는데 하나는 핵심요소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시스템화하는 국가적 연구개발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다. 또 대학들이 새로운 학문과 기술에 신속하게 적응 가능한 이공계 학위와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한다.
세계적인 컴퓨터 제작사인 인텔에서는 탐색 연구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미래 컴퓨터 산업 시장에 대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는 ‘분자 파운드리(The Molecular Foundry)’ 연구센터가 2006년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이 연구센터의 특징은 나노 및 분자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나 공학 연구를 위해 연구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학제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제안서 공모를 통해 내부 연구자와 외부 사용자 간에 실질적인 공동연구를 유인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다학제 간 성격의 분자공학에 관련된 복합적 연구를 중추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효과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교과과정과 대학, 연구소, 산업체가 유기적으로 조직된 교육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분자공학교육의 전략적 중요성을 크게 인식해 현재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에서는 분자공학 교육과정을 대학원 과정에 설치해 운용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도 서둘러 분자공학 교육과정 설치를 계획중이다.
분자공학은 기존의 독립된 하나의 학문으로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다학제적·융합적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체계적이고도 복합적인 학제 간 연구와 교육이 충실히 수행된다면, 현재 주요 관심사가 되고 분자수준의 신물질 제조나 제어에 관한 새로운 지식 및 기술들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이용한 고부가가치의 산업적 활용영역도 크게 확대될 것이다.
분자공학 분야는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비교우위에 서서 발전할 가능성이 큰 미개척 분야이며 다가올 21세기의 핵심 과학기술이다. 그러므로 이 분야를 성장시킬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과 지원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황호정 중앙대 공대학장 hjhwang@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