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 생산의 38.3%를 차지하고 있는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육성책이 최근 정부와 여당, 민간 일각에서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의 핵심이면서도 기술력의 취약으로 사실상 방치됐던 부품·소재산업의 기술 자립을 촉진하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부품·소재산업은 전체 고용의 45.6%나 점유하고 있어 육성책이 제대로 시행될 경우 부품·소재의 국산화와 함께 신규 고용 창출을 통한 실업난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등 국가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부품·소재산업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투자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내수 창출도 어려워 수입에 의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 IT수출이 급증하면서 일본으로부터 관련 부품의 수입도 덩달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등 구조적인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작년만 보더라도 부품·소재 대일 수출이 77억달러인 데 반해 수입은 216억달러로 139억달러라는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대일 무역적자가 190억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7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는 국산 부품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술 개발은 뒷전인 채 수입에만 의존해온 산업 풍토가 세트산업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품·소재산업을 황폐화한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램 등 몇몇 분야를 빼면 우리의 부품·소재 기술력은 선진국의 80%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일 경쟁력 지수를 보면 전기전자는 그래도 타업종보다 나은 편이다. 하지만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핵심 부품의 경우는 사정이 다를 게 없다. 휴대폰과 디지털TV·PDA는 국산화율이 60%를 상회하는 등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PC나 PDP, TFT LCD는 30∼50% 안팎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핵심 부품은 외산에 의존하다 보니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쏟아져 나오는 첨단제품과 발 빠르게 진보하는 디지털 기술 추세를 감안하면 기초 핵심분야인 부품·소재산업 육성이 절박한 시점이다.
일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부는 R&D형 제품 개발에 중점을 둬 1단계로 수입 대체형에, 2단계로는 수출 촉진형에 지원을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3단계는 수요기업이 국내업체나 지리적 이점이 있는 인근 국가 수출이 가능하도록 국내에 공장을 유치하고, 4단계는 개발이 어려운 기술의 경우 M&A나 로열티 지급 등으로 기술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세부적인 계획이 조만간 발표되겠지만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이고 전폭적인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취약한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적당히 지원하고 그치는 과거의 전시행정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한·미,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움직임을 보면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구체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한·일 FTA만 보더라도 협정 타결로 가장 피해를 보는 부분은 부품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즉 FTA가 체결될 경우 한·일 간 부품·소재 부문의 무역 역조가 지금보다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럴 경우 국내 부품산업의 황폐화는 물론 원가 상승으로 인한 세트업체의 경쟁력 약화 등 산업 전반에 엄청난 악영향이 우려된다. 우리가 서둘러 부품·소재산업의 기술자립과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기술 축적을 위한 올인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