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항법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세계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고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EU는 개발 계획중인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우리나라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으며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다양한 ‘당근’을 내밀었다.
GPS는 비행기·선박·자동차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공위성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다. 항공·해양·육상·국방·재난 방재 등의 국가 인프라뿐 아니라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인 텔레매틱스, 차세대 이동통신, 로보틱스에 활용하는 핵심 IT기반 시설이다. EU는 이를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GPS 주도를 저지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 GPS를 이용한다.
◇몸 달은 미국=외교부·정통부·해양부·건교부 등 GPS 관련 정부 부처는 미국 정부와 2일 오전 9시부터 하루종일 ‘한·미 GPS협력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GPS 위성신호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위성 추가 발사 계획과 GPS 정책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한국이 GPS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용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특히 우리 정부에 GPS 신호 무료 사용 기간 연장 등의 당근을 제시했으며 한·미 GPS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지난 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GPS 신호사용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2007년 이후 측위위성을 통해 GPS를 서비스하는 나라들에 로열티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회담은 미국이 제안해 열린 것.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관계를 감안해 그동안 EU의 갈릴레오 프로젝트 지분 참여 요청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지만 지난달 20일 EU 사무국이 위치한 벨기에에서 과학기술자문회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EU와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를 벌여 정책 전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갈릴레오 앞세운 EU의 반격=‘갈릴레오 프로젝트’는 인공위성에서 나오는 신호를 통해 선박·항공기 등의 위치를 파악하는 유럽 독자적인 GNSS 사업으로, 유럽 25개국이 공동 참여했다.
EU와 유럽우주국(ESA)은 미국이 GPS시장을 독점하고 무기화·상용화하는 것에 반발, 이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며 오는 2008년께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EU가 한국에 구애의 손길을 뻗치는 것은 IT인프라가 풍부하고 휴대폰 보급률이 높아 GPS·내비게이션·LBS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테스트베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EU는 갈릴레오 지분참여 금액을 당초 요청액수인 2억유로달러에서 최근 500만유로달러로까지 낮추면서 이스라엘, 중국에 이어 한국의 참여를 적극 요청했다.
◇전망=우리 정부가 EU를 편들지는 미지수다. 우리 정부로선 미국과의 외교통상 관계를 감안해야 하며 GPS 교체에 따른 막대한 비용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미국 GPS 사용에 따른 정보의존도 심화 등 독점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향후 정부의 결정이 주목된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정부가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미국이 독점한 GNSS 시장에 경쟁체제가 도입돼 국내 업체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현행 GPS를 변경하는 데 따른 경제적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