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와 접하게 되며,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국의 첫번째 여성 우주인이 된 헬렌 셔먼도 라디오 광고방송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 경우에 해당한다.
1989년 6월 어느 날,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마스 제과회사에서 근무하던 헬렌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한 회사의 광고를 듣게 된다.
‘우주인 모집-경험은 필요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그녀의 운명을 바꾼 영국의 첫번째 우주인 선발 모집 광고의 내용이었다. 두 명의 우주인을 러시아 스타시티의 유리 가가린 훈련센터에서 1년 6개월 동안 훈련시키고, 이 가운데 최종 한 명을 소유스 우주선을 이용해 우주정거장 미르에 보내 우주실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헬렌은 1만3000여명의 지원자가 응모한 가운데 실시된 선발에서 정신·신체적 테스트를 당당히 통과했다. 91년 5월 18일, 마침내 헬렌은 두명의 구 소련 우주비행사와 함께 ‘주노(Juno:로마신화에 나오는 주피터신의 아내로 결혼의 여신) 우주 임무’에 영국의 첫 민간 우주인으로 참여해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재정지원을 주관하는 회사의 비용조달 관리 실패로 보험사가 비용을 지급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영국에서 처음으로 민간회사가 프로젝트를 주관해 상업적 우주인 선발과 과학임무 수행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주비행에서 돌아온 후, 헬렌은 과학자로서의 일을 지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과학교육 발전과 대중화를 위한 ‘과학 앰버서더’ 활동(강연, 저술, 텔레비전 및 라디오 과학 프로그램 진행 및 출연, 산업계 기술자문 등)을 수행하고 있다.
90년대 민간 우주인 배출 프로그램을 진행한 영국과는 10여년이 넘는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지난 10월 우리나라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첫 한국 우주인을 양성한다는 발표를 했다. 영국의 우주인 배출 상황을 반추해 보면, 그 상황이나 과정이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우리나라도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을 위해 정부와 민간 컨소시엄이 함께 재정을 지원해 정신·신체적으로 적합한 두명의 우주인 후보자를 한국에서 선발한 후, 러시아에서 훈련을 시켜 2007년 말 소유스 우주선을 이용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 우주실험과 같은 과학임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우주인 양성과 같은 유인 우주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여행을 실현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 아래 △과학 및 산업적 연구를 목표로 하는 1단계 △1단계 기술을 바탕으로 상업적 연구개발·생산·오락 및 상업광고 기능을 활용하는 2단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개인적인 우주여행을 하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1단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현실 상황에 맞게 1단계와 2단계를 적절히 조합해 국민적 자긍심과 과학기술의 대중화, 그리고 유인 우주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재정적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므로 정부와 민간 컨소시엄의 명확한 역할 및 재정 분담으로 한국 우주인 배출 과정을 전 국민적인 축제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매우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최초의 한국 우주인을 통해 유인 우주비행·실험 경험의 축적 및 과학기술 성과를 얻을 수 있으며, 적극적 홍보를 통해 과학기술에 친숙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공계 기피현상 완화 등에 일조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이벤트성이라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우리 상황에 적합한 과학임무(의생리학·생물학·지구관측·물리학·과학교육 분야 등)를 개발함으로써 과학적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진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부장 zckim@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