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국은 왜 대선제도 개혁않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 대선 결과가 마침내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 케리 후보의 거센 도전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미국의 대선은 모든 지구촌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다. 우스갯소리로 미 대선에는 세계인이 모두 투표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은 러시아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김은 전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모든 분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지, 어느 당이 집권하는지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일희일비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와 케리의 승패를 떠나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면서 떨칠 수 없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미 국민들이 왜 부시를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미국은 왜 대선제도를 개혁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대선제도는 매우 독특하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 국가에서는 국민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다. 유일하게 국민투표와 대통령 선출사이에 선거인단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각 주에서 득표를 많이 한 후보가 해당주의 선거인단 표를 독차지하게 돼 있다. 이 선거인단이 다시 대통령을 뽑는다. 그러다보니 말썽도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0년 부시와 앨 고어 간의 대선이 그랬다. 앨 고어가 득표수에서 앞서고도 부시보다 선거인단표에서 뒤져 눈물을 삼켜야 했다.

 상식적으로 선거인단 제도는 불편하고 불합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는 따지고 보면 엘리트주의의 산물이다. 국민투표를 거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뽑는 사람들은 엘리트층인 선거인단이다. 선거인단은 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투표에서 정해진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불필요한 투표를 한번 더 해야 하고, 정해진 후보에 투표해야 하는 선거인단의 양심을 믿어야 한다.

 2000년 대선 때 치열한 개표전쟁을 치렀던 플로리다주를 중심으로 대선제도에 대한 개선 움직임도 있다. 선거인단 확보에서 이긴 후보에게 전부를 주지 말고 득표수만큼 배정하자는 게 요지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인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미국이, 아니 미 국민이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선거인단제도를 바꾸려하지 않는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 제도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과 개념이 들어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선거인단 제도는 미 연방 창설 당시 연방파와 주정부파 간 합의의 산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효율성과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합의의 원칙과 전통을 더 존중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제도 그 자체보다 거기에 담긴 정신과 이를 지키려는 자세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민들은 실천하고 있다.

 이제 우리를 되돌아 보자. 하루가 멀다하고 개혁이니 개선이니 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고 군사독재까지 거쳤으니 고칠게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제도개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지나치게 믿는다는 점이다. 정작 제도를 만들 당시의 목표와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잘 지키려 하고 있는지는 간과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 십수년간 수 없이 뜯어 고쳐졌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헌재의 신행정수도이전 특별법 위헌 판결은 일파만파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또 4대 개혁법안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다.

 모든 걸 개혁의 대상으로 보기 전에, 제도를 바꾸기 전에 그 속에 담긴 정신을 살펴보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때다. 제도 개혁이 오히려 정신과 자세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유성호부장@전자신문, shyu@